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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포 수준의 애플의 애프터서비스…약관에서 ‘대한민국’만 지우면 끝?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코노미스트] 법정 싸움서 지자 약관 적용국 수정 꼼수 … 공정위도 나 몰라라

애플은 한국 소비자들을 위한 홈페이지에서 한국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애프터서비스 약관 적용 국가를 소개하면서 대한민국은 교묘히 뺐다.

애플의 무성의한 애프터서비스(A/S) 정책이 또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한국에서 회사 측에만 유리한 일방적인 A/S 문제로 소비자들에게 불편을 안겨준 것이 여태껏 한두 번이 아니지만, 한국 정부까지 이를 사실상 방관하면서 사태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민 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4월 7일 ‘애플 수리 정책에 대한 입장’ 성명서를 내고 ‘애플이 한국어로 된 A/S 약관을 버젓이 홈페이지에 게시하고도, 약관 적용 국가에서 대한민국은 제외하는 꼼수를 써서 소비자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얽힌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소비자 오모(31)씨는 지난 2012년 12월 애플의 ‘아이폰 5’를 구매했다. 출시된 지 얼마 안 된 신제품 성능과 특유의 감성적인 디자인에 만족하며 아이폰을 쓰던 것도 잠시였다. 이후 2013년 11월 배터리가 부풀어 오르는 현상과 액정 이상, 배터리 지속시간이 심하게 짧아지는 것을 확인한 오씨는 광주에 있는 애플코리아 공인 서비스센터를 찾았다. 아직 무상 수리를 받을 수 있는 보증기간 중이었기에 무상으로 수리를 받을 수 있으리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센터 측이 오씨에게 들려준 답변 내용은 황당했다. “고칠 수 없으니 34만원을 내고 리퍼폰을 받아서 쓰라”는 것이 센터 측 답변이었다. 리퍼폰은 고장이 나지 않은 중고 부품을 일부 조립해서 만든 재제작품으로, 중고품이나 다름없다.

오씨는 거절의 뜻을 전하며 자신의 휴대폰을 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센터 측은 이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애플의 A/S 정책상 불가능하다”며 수개월간 휴대폰을 돌려주지 않은 것이다. 참다 못한 오씨는 지난해 초 애플코리아 유한회사를 상대로 아이폰 구입비 102만7000원을 돌려달라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그는 센터 측 부주의로 자신의 휴대폰에 저장됐던 사진 등의 자료도 손실됐다며 취지 변경과 함께 50만원을 더 청구했다. 광주지방법원은 지난해 12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애플코리아 유한회사가 오씨의 청구액 152만7000원을 모두 배상하라고 결론지었다. 소비자가 유·무상수리 진행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도록 애플이 일방적으로 정한 A/S 정책이 잘못됐음을 법원도 인정한 것이다.

지난해 7월 오씨의 사연을 접한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는 애플의 A/S 약관이 불공정하다며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약관 심사를 청구했다. 오씨 같은 피해자가 계속해서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당시 경실련이 문제를 제기한 애플의 A/S 약관은 ▶‘수리 과정에서 교체된 부품이나 제품은 애플의 소유로 한다’는 조항 ▶‘계약서에 명시된 경우를 제외하고 애플은 결과적 손해, 특별한 손해, 간접적 손해, 징벌적 손해나 제3자 청구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조항 ▶‘애플은 계약을 언제든 변경할 권리를 보유하고, 서비스가 시작되면 그 주문은 취소할 수 없으며 고객은 계약을 철회할 수 없다’는 조항 등이었다.

전자제품 특성상 하자나 고장으로 수리가 필요한 상황이 종종 발생하는데도 애플은 소비자가 주체적으로 수리 여부나 방법, 시기 등을 결정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의 제기 취소가 무조건 안 되며, 수리 중에는 소비자가 요구해도 제품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식의 약관이 너무 회사 측에만 유리하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소비자들 사이에서 문제점으로 손꼽히던 애플의 일방적이고 폐쇄적인 A/S 정책을 지적한 내용이었다.

보증기간에 무상 수리는커녕 리퍼폰 쓰라니…

하지만 공정위는 사실상 애플 편을 들었다. 박성용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운영위원장은 “지난해 7월 경실련이 약관 심사를 청구한 데 대해 공정위는 해당 약관이 국내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 심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는 사실을 올 3월 말 통지했다”고 말했다. 경실련이 제기한 애플 A/S 약관의 위법성 문제에 대해 정부가 ‘한국이 위법성 여부를 논하기 어렵다’며 청구를 기각한 것이다. 박 위원장은 “애플이 홈페이지에 한글로 수리 약관을 명기(明記)했음에도, 공정위는 일부 모호한 조항을 근거로 국내에서 적용되지 않는 약관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그간 애플 홈페이지(www.apple.com/kr)에서는 애플이 한국어로 A/S 약관을 표기한 부분이 보였지만 조항 중 약관 적용 국가들을 명기한 8항에서 대한민국은 교묘히 빠져 있었다. 한국어로 된 서비스는 하면서 약관 적용 국가에서 한국은 슬쩍 빼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이 부분이 경실련 측에서 문제를 제기한 ‘일부 모호한 조항’이다. 애플로서는 ‘해당 약관은 해외가 아닌 국내의 소비자와는 관련이 없다’는 식으로 뒷짐 지고 한발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가 경실련의 약관 심사 청구를 기각한 것 또한 이 같은 조항이 애매하다고 판단해서다. 대한민국이 약관에서 빠졌으니 약관 자체를 심사할 권리가 한국 정부에 없다고 판단한 셈이다.

경실련 관계자는 “애플은 오씨와의 법정 싸움이 있기 전과 달리, 해당 약관이 한국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소비자들에게 주장하고 있다”며 “또한 약관에 해당하는 ‘수리접수서’의 문구를 일부 변경하는 등의 방식으로 편법을 써가며 회사에만 유리한 수리 계약을 할 것을 소비자들에게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실련 측이 받은 소비자 제보에 따르면 최근 애플의 수리접수서에는 ‘수리를 의뢰한 제품에 대해 Apple 진단 수리센터를 통해 수리가 진행되며, (약 3~4일 소요/휴일 제외) 진단을 통과하지 못한 경우 수리가 거부될 수 있고, 수리가 진행되는 중에는 취소가 불가함을 안내받고 확인하였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소비자는 여기에 서명을 해야 수리를 접수할 수 있다. 이 수리접수서 내용 또한 오씨와의 법정 싸움에서 패소한 후 애플 측에서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소비자 김윤석(33)씨는 “고장 난 아이폰을 센터에 맡겼더니 유상 수리를 결정하면서 내가 수리를 받고 싶지 않아도 수리비를 내야만 기기를 찾아갈 수 있다고 해 황당했다”며 “세계 최첨단 IT기기를 만드는 기업에서 A/S는 전근대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민법 제673조에는 ‘수급인이 일을 완성하기 전에는 도급인은 손해를 배상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수급인에게 아무 귀책사유가 없는 경우도 도급인은 일을 마치기 전까지 수급인의 손해를 배상하고, 계약을 해제할 권리가 있음을 담은 내용이다. 애플 제품의 수리가 민법이 명시한 도급과도 유사한 성질을 갖는다는 점에서, 애플이 법적으로 보장된 한국 소비자들의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울러 공정위 판단대로 애플의 A/S 약관이 한국에 적용되지 않는다면 애플 제품에 대한 A/S는 회사 측의 일방적인 방침 대신 공정위 고시(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라 진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조건 소비자 탓만 하는 관행 고쳐야

애플의 폐쇄적인 A/S 정책과 관련해 소비자들 사이에서 문제가 제기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때마다 애플코리아는 본사 정책만 운운하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애플코리아와 공정위의 ‘모르쇠 경쟁’ 속에 소비자 피해만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4100만여명의 국내 스마트폰 소비자 중 33%인 1300만여명이 애플 아이폰을 쓰고 있다. 이처럼 수많은 소비자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애플은 제품에 하자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도 무조건 소비자 탓만 하던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편 본지는 애플코리아 홍보팀에 이 같은 내용에 대해 문의하면서 ‘경실련 측의 문제 제기 중 객관적이지 못한 부분 위주로 설명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애플코리아 측은 대응을 하지 않았다. 어떤 해명도 반박도 없었다.

이창균 이코노미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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