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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기술개발-일본적 노하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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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은 독창적인 것 보다 모방에 능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오늘날 일본이 세계 시장을 제패하고 있는 자동차·컬러TV·VTR·카메라·반도체·로보트 등 기술상품 중 일본 오리지널은 단 한가지도 없다.
그러나 일본의 자동차 생산량은 연간 1천1백만 대를 넘어 종주국 미국을 앞지르고 있으며 첨단기술의 총아로 각광받는 반도체 산업에서도 64KD램은 세계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 사람들이 일제 카메라를 쓰고 있으며 VTR는 세계시장의 60%,로보트는 80%를 지배하고 있다.
자국 오리지널이 없으면서도 본국 제품을 밀어내고 세계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다는 점에 일본적 기술개발의 노하우와 특징이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2차대전후 구미와의 기술격차를 절감한 일본인들은 그 갭을 메우는 데 기초과학부터 차분히 다져나갈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판단, 구미 특히 미국의 선진기술을 들여오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당시만 해도 미국은 일본이 미국 시장을 위협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아 돈만 주면 얼마든지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지금도 일본은 연간 18억달러(1조4천5백억원)를 기술도입 댓가로 지불하고 있는데 그 66%가 미국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도입한 기술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바탕으로 보다나은 기술을 만들어 대량생산 시스팀에 연결시키는 데 천재적인 응용력을 발휘했다.
기초과학기술의 적극적 도입과 응용기술의 개발, 이것이 전후 일본의 기술개발정책의 기본을 이루었으며 경·박·단·소를 특징으로 하는 선단기술에서 그 성과가 꽃을 피우고있다.
일본의 기술개발체제의 얼개를 보면 과학기술정책의 최고심의기관으로 수상을 의장으로 하는 과학기술회의가 있어 여기서 기본방향이 결정된다.
이 방침을 바탕으로 과학기술청이 각부처 간의 개발정책을 조정, 국가 전체로서 종합적이고 효율적인 과학기술을 추진하며 문부성은 각 대학의 연구를 관장한다.
각 부처는 이같은 조정아래 각기 행정목적에 필요한 연구개발계획을 추진한다.
각 부처 산하 국립연구기관은 반도체·생체 정보처리시스팀연구 등으로 유명한 통산성 공업기술연구원 산하의 전자기술총합연구소를 비롯, 문부성 산하의 유전자연구소 등 모두 1백48개에 달한다.
또 전신전화공사 산하의 4개 전기통신연구소·국철의 철도기술연구소 등 공공기업체 산하 연구기관이 15개, 이화학연구소·일본방송연구소 등 특수법인의 시험연구기관도 20개가 있고 각도도부현에 소속된 연구기관도 6백25개에 달한다.
이같은 공공적 성격을 띤 연구기관 외에 1만6천여개의 민간기업이 각기 연구전담기관 혹은 부서를 갖고 있으며 이들 1만7천2백여개 관·공·민 연구기관 등이 상하 종횡으로 유기적 연관을 맺으면서 첨단기술을 비롯, 공해방지·성에너지 등 각종 연구를 추진해 나가고있다.
이처럼 방대한 과학기술연구시스팀을 움직이는 각 분야의 연구자 수는 소련의 1백41만명, 미국의 69만8천명에 다음가는 34만2천명에 달하고 연간 연구비 투자액은 정부 1조3천8백88억엔, 민간 4조4천8백60억엔, 합계 5조8천15억엔(외국투자67억엔 포함·82년 기준)에 이르고 있다. 전체 국민소득의 2.78%가 과학기술연구에 투입되는 셈이다.
연구개발투자의 정부 대 민간비율은 23.6 대 76.4로 정부의 부담비율이 미국의 정부 부담비율46.7%, 영국의 49.8%, 프랑스의 57.6%, 서독의 43.1%에 비해 훨씬 낮기 때문에 흔히 일본의 기술개발정책은 민간주도형이란 말을 한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국방연구비 비율이 낮은 데다 정부의 지도아래 민간의 부담으로 추진되는 연구계획이 많은 점을 고려하면 일본의 기술개발연구도 역시 정부주도 하에 추진된다고 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10년, 20년 앞을 내다보는 장기계획아래 국가차원의 전략연구프로젝트를 설정, 이를 연구테마에 따라 정부산하연구소나 민간연구소에 맡기고 있다.
통산성이 66년에 설정한 「대형프로젝트계획」, 오일파동직후인 74년에 수립한 「선샤인계획」, 78년의 「문라이트계획」, 81년의 「차세대산업기반기술연구개발계획」, 그리고 과학기술청이 81년에 설립한 「창조적과학기술추진계획」 등은 앞으로 일본의 기술개발의 행방을 가름할 국가전략 프로젝트들이다.
국가가 전략적으로 추진하는 이같은 연구계획은 모두 50여개 테마에 달하며 여기에 투입되는 연구비만 연간 4천억엔에 이르고있다.
민간기업간의 기술개발협력체제로 외국의 주목을 모으고 있는 것은 이른바 광공업기술연구조합제도다.
민간기업의 한정된 자본과 연구스태프를 효율적으로 활용·협동해서 기술개발을 추진한다는 목적으로 마련된 제도로 61년에 조합법이 제정된 이래 58개 조합이 설립됐으며 그중 17개 조합은 목적을 달성, 해산하고 현재 41개 조합이 활동중이다.
이처럼 독특한 시스팀으로 첨단기술개발에 성공, 구주를 압도하고 미국과 어깨를 겨루게된 일본에도 고민은 있다.
기초과학기술의 축적이 빈약한 데다 그 공급원이었던 미국이 일본의 도전에 놀라 경계태세를 취하게 된 것.
한 전문가는 『현재 추진하고 있는 연구로 앞으로 20년은 견딜 것이지만 그 이후는 예측을 불허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를 내다보고 추진하고 있는 「차세대산업기반기술연구」 「창조적과학기술추진계획」 등 국가적 프로젝트의 성패에 「기술일본」의 장래가 걸려있다고 할 수 있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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