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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시계 멈추고 떠난 배용연·오빛나 부부, 2년간의 안식년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여성중앙] Time Poor or Rich "당신도 시간 빈곤자인가요?"

배용연·오빛나씨 부부는 2012년 9월부터 2014년 5월까지 세계 일주를 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남편 배용연씨는 포스코 계열 회사인 소프트웨어 마이다스아이티에서 7년 차 대리로 일했고, 아내 오빛나씨는 LG전자에서 5년 차 대리로 근무하며 남부럽지 않게 바쁜 일상을 살았었다.

오전 9시에 출근해서 빨라 봐야 밤 11시였고, 평균 새벽 1시가 되어야 퇴근하곤 했다. 주말에도 출근하는 날이 많았고, 휴가라도 내려고 하면 눈치가 보여 연차 한번 속 편히 쓸 수가 없었다. 여름휴가도 주말을 포함해 사나흘 가는 게 고작이었기 때문에 직장 생활 7년 만에 녹다운이 되었다.

얻은 것이라곤 10kg 가까이 불어난 체중뿐이었다. 그러다 기계처럼 돌아가던 시간을 멈추기로 결심했다. 여러 가지 사정이 맞아떨어졌다. 그즈음 아내 오빛나씨 또한 전에 다니던 외국계 회사와 비교해 합리적이지 못한 일들이 잦아 스트레스가 커 지쳐 있었던 것.

국내 대기업으로 이직할 때만 해도 일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쯤에서 잠깐 쉴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결혼하고 6개월쯤 됐을 때의 일이다.

“그날은 일이 그나마 일찍 끝나서 밤 11시쯤 집에 갔어요. 아내는 역시나 그날도 회사 얘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연차를 쓰는데 왜 사유와 목적지를 적어내야 해? 이해할 수 없어’ 이러면서요. 저한테는 이미 당연한 일이었는데 아내는 아직도 이해를 못 하겠다며 불만을 토로했죠(웃음). 그러더니 더 이상은 이렇게 못 살겠다면서 ‘다 집어치우고 여행이나 가자’고 하더라고요. 저는 졸려서 잠기운에 그러자고 했어요.”

정신을 차리고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한 건 그다음이었다. “일단 현실적인 상황을 따져봤어요. 저 같은 경우는 회사에서 팀장을 시키니 마니 할 때였고, 아내도 다른 회사로부터 이직 제안을 받은 상태였어요. 그대로 진행된다면 앞으로 몇 년간은 전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할 테고, 그러다 그 사이에 아이가 태어난다면 평생 배낭여행을 가기는 글렀다 싶었죠. 결론은 책임이 조금이라도 작을 때 떠나자는 것이었어요.”

경비는 전세금과 두 사람의 퇴직금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계산은 간단했다. 하루에 10만원씩으로 계산한 예상 경비에 비상금 1000만원을 더해 약 9000만원을 세계 일주 비용으로 잡았다. 그 돈을 뺀 나머지 돈은 남겨두었다가 돌아와서 원룸을 구하는 데 쓰기로 했다.

“아직 아이가 없고 젊으니까 돌아와서 구직 활동을 하면 어렵지 않게 재취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남들보다 몇 년 뒤처지는 게 아닐까도 걱정되긴 했지만, 2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서 앞으로의 삶을 바꿀 수 있다면 충분히 선택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더 컸어요.

2년간 스스로의 힘으로 세계 일주를 해낸다는 것 자체로 큰 성취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고, 그 힘으로 뭐든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중동을 거쳐 북아프리카에 머무는 동안 1년이 지났다. 그다음에는 3개월간 스페인에서 지내며 어학연수를 했다. 그 뒤에 있을 6개월간의 중남미 코스에 대비한 것이었다. 언어가 통하면서부터는 여행의 질이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스페인에서 미국인 커플을 만났는데 그들도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들과 여행 중이라고 하더군요. 각각 변호사와 회계사로 일하느라 아이들과 하루 1시간 이상 놀아준 적이 없어서 처음엔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힘들었대요.

그런데 여행을 하며 아이들과의 관계가 조금씩 좋은 쪽으로 변해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더라고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그때 떠나지 않고 계속 살던 방식대로 살았다면, 돈은 많이 벌었을지 몰라도 아마 이들과 똑같은 고민을 하며 살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사람은 현재 세계 일주를 마치고, 네덜란드에 정착해 살고 있다. 남편 배용연씨가 그곳에 있는 회사에 취업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회사 다니던 시절, 네덜란드에 있는 협력 업체에 파견 근무를 간 적이 있어 세계 일주를 하는 중에 당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찾았어요.

함께 식사를 하는데, 여행을 마치면 뭘 할 거냐고 묻더라고요. 계획 없다고 했더니 자기들 회사로 올 생각이 있으면 연락하라는 거예요. 이후 한국에 돌아와 구직 활동을 하는데 고민이 되더군요. 다시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할 것인가, 아니면 네덜란드에 있는 회사로 갈 것인가.

아내와 상의한 끝에 네덜란드에 가기로 결정했어요. 여행하는 것과 사는 것은 또 다르잖아요. 외국에서 살아볼 수 있는 새로운 기회라고 결론을 내린 거죠. 세계 일주를 하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기회예요.”

가방 4개로 2년간의 세계 일주를 해낸 경험자답게 네덜란드행 이삿짐도 아주 단출했다. 경험을 통해 많은 짐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과 비교하자면 몸도 마음도 가볍게 살고 있는 느낌이에요. 네덜란드에서 지낸 지 6개월째인데 남편이 출근해서 일하는 동안 저는 집에서 책을 써요. 여행 이야기를 정리해서 엮어보려고요. 부지런히 마무리하면 6월에는 출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모로 일상이 많이 달라졌죠.”

두 사람에게 ‘만약 2년 전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물었다. “5kg쯤 살이 더 쪘을 테고, 건강도 많이 안 좋아졌을 거예요. 부부 사이도 지금만큼 좋지 않았을 것 같고요. 2년 동안 하루 24시간을 붙어 있다 보면 정말 대화를 많이 하게 되거든요. 아마 5년간의 연애 시절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아요.

몰랐던 점도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는 것도 많아지고…. 정말 특별하고 끈끈한 사이가 되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여행지에서 마주치게 되는 상황들은 일상적이지 않은 것이 많다. 그러한 상황들을 함께 헤쳐 나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단다. ‘배낭 메고 전 세계를 떠돌아다녔는데 뭔들 못 하겠어!’

배용연·오빛나 부부는… 대기업에 다니다 결혼 후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 일주를 감행. 2년간의 세계 여행을 마치고 지난여름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이후 남편이 네덜란드에 있는 회사에 취업하면서 현재 두 사람은 네덜란드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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