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는 법에 따라 원칙대로 수사할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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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가 14일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에서 불법 도청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이제부터 휴대전화 배터리를 두 개 들고 다니겠다."

불법 도청 수사가 시작된 지 7일째 되던 8월 1일, 기자단 브리핑 도중 이번 사건을 진두지휘한 황교안(48.1981년 23회 사법시험 합격)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는 이런 말을 던졌다. 끊임없이 걸려오는 기자들의 전화를 제대로 받지 못한 데 대해 미안하다는 뜻이었다. 동시에 수사 진행 상황을 자신을 통해서만 알리겠다는 우회적 표현이었다.

그 약속은 14일 수사 결과 발표 때까지 지켜졌다. 황 차장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취재진의 문의에 시달렸다.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도청 테이프 내용은 외부로 일절 유출되지 않았다.

이런 원칙 때문에 매일 오전 서울중앙지검 청사 6층 2차장실은 30여 명의 기자로 장사진을 이뤘다. 유일하게 수사 당사자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황 차장은 추측성 기사가 나오면 "나만 사건을 잘 아는데 어떻게 그런 기사가 나오느냐"며 격앙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칭찬에 인색한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 수사를 성공작으로 평가한다. "국가정보기관을 상대로 한 수사에서 보안이 관건인데, 이번 수사는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공운영 전 미림팀장의 집에서 불법 도청 테이프 274개가 압수된 사실도 이틀 뒤에서야 알려질 정도였다.

황 차장에게 이번 사건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2002년 초~2003년 3월 서울지검 공안2부장을 지내며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국정원 문건'이라고 폭로한 것과 관련한 고소.고발 사건의 초반 수사를 맡은 경험 때문이다. 올 초 이 사건 관련자들은 모두 무혐의 처리되거나, 사건이 각하된 이유로 당시 부실 수사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날 수사 결과를 발표한 황 차장은 수사 성과를 묻는 질문에 "검사는 법에 따라 원칙대로 수사할 뿐"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그는 대검 공안 3.1과장,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 등 공안 분야의 요직을 두루 거친 '공안통'이면서 원칙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문병주 기자 <byungjoo@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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