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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여 명 휴대전화 입력 24시간 도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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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R2수집팀은 이동통신사의 교환기와 KT의 교환기가 설치돼 있는 광화문.구로 등 6개 주요 전화국에서 유선중계통신망을 통째로 끌어다가 R2 감청장비에 연결해 해당 통신망을 거치는 모든 통화를 도청했다. 처음에는 무차별적으로 도청했으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1999년 9월부터 특정번호를 미리 입력한 후 도청했다.

국정원은 민주당 내분사태, 현대그룹의 유동성 위기, 대북사업, 의약분업, 금융노조 파업, 각종 게이트, 대선후보 경선 등 사회의 이목을 끄는 주요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관련자들을 집중적으로 감청한 것으로 수사 결과 드러났다.

임동원 전 원장이 재직하던 시기(99년 12월~2001년 3월)인 2000년 12월 민주당 내분사태와 관련해 권노갑 최고위원 퇴진을 거론한 소장파 의원들을 감청했고, 햇볕정책을 비판하던 군사평론가 지만원씨를 2000년 가을부터 수시로 감청했다.

신건 전 원장 재직시(2001년 3월~2003년 4월)에는 1800여 명의 휴대전화 번호 입력이 마무리되면서 도청장비가 쉴새 없이 운용됐다. 검찰 관계자는 "적법 감청 과정에 일부 끼워넣는 정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의도된 조직적.계획적인 대규모 불법 도청이었다"고 규정했다.

◆ 유선전화 불법감청=중앙정보부 창설 이후부터 시작돼 97년 말 대선 직전까지 이뤄진 사실도 검찰 조사에서 확인됐다. 통신비밀보호법이 제정된 93년 12월 이후에도 유선전화 불법도청은 중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기부의 과학보안국 수집과 소속 담당직원이 법원의 허가를 받지 않은 채 광화문.혜화.영동.신촌.신사.목동 등 전화국 직원에게 도청 대상자의 유선전화 회선을 안기부 회선에 연결하도록 요청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매주 1~2차례, 매회 2~3개의 유선전화번호를 제시하며 회선 연결을 요구했기 때문에 대규모 도청은 어려웠지만 주요 인사에 대한 집중 도청에는 유용했다고 한다. 매달 100만~200만원의 예산을 편성해 해당 전화국 시험실장에게 협조 및 보안 유지 대가로 매달 10만~20만원씩을 줬다. 도청 내용은 중요도에 따라 보고라인이 달랐으나 과학보안국 담당 직원이 중요 내용을 요약.정리한 통신첩보를 밀봉 상태에서 매일 안기부장과 차장에게 전달했다.

아날로그 휴대전화 불법 도청은 96년 초 이탈리아에서 장비 4세트를 구입, 99년 12월까지 사용됐다. 이 장비는 10~15㎏의 007가방 크기로 휴대가 가능했고 6개의 통화를 동시에 도청할 수 있었다. 이 기간 중 마약사범 수사 및 자체 감찰 명목으로 1~2개월 단위로 수십 차례 불법 사용됐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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