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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새지도<89>-대성그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최근 수년동안 대농은 그야말로 인고의 새월을 보냈다.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채 6년동안(75∼81년) 은행감리를 받으며 감량경영을 강행했다.
매도 일찍 맞는편이 낫다고 일찍서둔 감량경영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최근 많은 기업그룹들이 사양길에 접어드는데 반해 대농은 회생의 실마리를 찾았다.
회생의 전기는 오히려 은행감리단이 철수한 82년부터였다. 대구·안양공장을 비롯해 박룡학회장 개인차까지 처분해 은행부채의 3분의1 정도를 갚았고 최근들어 면방경기까지 겹쳐 회사경영도 활기를 되찾고 있는 것이다.
우선 달라진것은 윌2회 회장주재로 열리는 사장단회의의 분위기다. 한때는 아예 없어졌던것이 다시 생겨난것.한번은 자금회의고 다른한번은 영업회의다 지금도 자금관계는 박룡학회장이 직접 챙긴다.
자금이외의 일선영업은 2세인 박영일부회장이 맡아한다.계열회사별로 월2회업무회의와 이사회도 부회장 주재로 열려 수습2세로서는 폭넓은 재량권을 행사하고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대농의 경영인맥은 그룹의 모체였던 대한농산출신과 역시 초기에 쌍용그룹으로부터 인수했던 금성방직출신들로 대별된다.
임정규대농사장과 유명집미도파사장,천태경부사장등이 모두 대한농산출신이고 대농의 손해동그룹조정실장과 송영희부사장등이 금성방직출신이다..
박회장의 인척으로 경영에 참여하고있는 케이스로는 둘째사위 유석균씨가 대농건설사장에,막내사위 이상렬씨가 대농부사장에 각각 앉아있다.
주력기업인 대농의 사장임정규씨 (60) 는 회사내에서 박회장 다음의 원로격으로 계리에, 밝다.
유명집사장은 공채1기로서 미도파의 경영을 맡아 공채출신의 선두주자로 알려져있다.최근의 감량경영을 추진해오는 과정에서 큰몫을한 사람은 최병철대농부사장.재무구조개선을 위해그룹의 기본골격을 다시 짜고 재출발을 위한 과감한 정리작업을 밀어붙였다.
그밖에 대농유화의 김진억사장이 유일하게 중간에 스카웃된 케이스.금성사기획실장으로 있다가 옮겨왔다.
그동안의 회사사정이 무척 어려웠던만큼 경영체제도 매우 빠듯하개 짜여져있다. 박룡학회장-박영일부회장의 친정체제가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박영일부회장은 2세그룹중에서 비교적 일찍부터 경영수업을 쌓아온편에 속한다.72년 미국유학에서 돌아온이후 대농부사장으로 시작해 미도파사장·대농사장을 거쳐 부회장이 됐다.
미도파경영을 맡아서는 종전까지의 임대영업제를 지금의 직영제로 바꿔놓았다.
계열회사는 모기업인 대농을 비롯해 미도파·대농건설·대농유화등 모두 4개사로 단촐해졌다.미도파의 개인명의 지분도 모두 법인이름으로 돌렸고 골프장을 경영해온 미도파관광도 대농으로 흡수 통합시켰다.
『우리 배구팀(미도파여자배구단) 처럼 다시 일어서야지요』 (현대팀에 밀려 오랫동안 정상자리에서 밀려났었다) .
박영일부회장은 금년한해만 잘넘기면 내년부터는 비상경영체제를 해제, 보다 적극적인 경영이 가능할것으로 내다봤다.
재무구조개선도 은행과 약속한 선까지 대체로 끌어올렸고 적자에서 헤매던 대농유화도 흑자로 돌아셨다는 설명이다.
주력기업인 대농 역시 최근들어 면방경기의 회복으로 호전되고 있으나 면방이라는 업종에 한계가 있는만큼 다른분야로의 영역확대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내년부터는 미도파를 중심으로한 슈퍼체인등 유통업과 레저산업쪽으로 주력,그룹경영의 새로운 방향전환을 시도하겠다는 구상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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