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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보와 국익이 최우선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전옥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전 국정원 제1차장)

얼마 전까지 국내를 달궜던 미국의 사드 도입 논란이 잠잠해졌다. 지난 10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이 문제가 거론되지 않은 데다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이 “사드 배치를 논의할 시기가 아니다”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고위 관리나 미군 관계자들이 경쟁이나 하듯 사드의 한국 배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사드 제조사인 록히드 마틴조차 우리 정부에 사드 정보를 제공했다고 밝히며 정부를 압박하는 형국이다.

 이는 정부가 ‘전략성 모호성’을 견지한다면서 사드에 대해 침묵을 지켜온 정황과 무관하지 않다. 정부의 고민은 ‘아시아 재균형’을 추진하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신형대국론’을 밀어붙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패권 경쟁 사이에 우리가 끼여 있다는 인식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이 같은 미·중 간 갈등 프레임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의연한 외교’라 부를 수 있는 든든한 전략이 필요하다. 이 전략의 요체는 명확하다. 다른 그 무엇보다 우리의 안보와 국익을 최우선한다는 원칙을 견지하며 실리외교를 펼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드 배치는 당위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갈수록 긴박해지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려면 불가피한 조치다. 현재 북한의 핵 위협은 가상적인 이론 단계를 넘어 2~3년 안에 핵미사일을 실전 배치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미국 본토까지 타격 가능한 사정거리 1만2000㎞의 장거리 미사일(KN-08) 실전배치도 임박했다고 지난달 25일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장이 의회에서 증언한 바 있다. 북한이 핵잠수함 발사미사일(SLBM)을 시험발사한 사실도 확인됐다.

 반면 우리가 개발 중인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체계는 10년이 지나야 실전 배치가 가능할 전망이다. 또 한·미 동맹의 글로벌적 성격을 감안할 때 전 지구적 차원에서 사드 배치를 기획하는 미국의 전략과 한국의 국방 정책이 맥을 같이할 필요도 있다. 미·일 밀월과 한국의 중국 경사로 인해 한·미 동맹이 이완되고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점에서도 사드 배치는 의미가 있다.

 일본군 위안부나 독도 문제 등 과거사·영토 논란을 놓고 미국이 일본 편을 든다고 비판만 하고 있을 때인가. 외교는 철저히 리얼리즘에 입각해 주고받기식 협상(quid pro quo)을 하는 것이다. 누가 누구 편을 든다고 원망만 해서는 아무런 결과를 얻을 수 없다. 그렇다면 정부는 늘어만 가는 복지 비용을 줄여서라도 안보에 투자하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 ‘영구평화론’의 주창자인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조차 “평화는 돈으로 사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점에서 사드 배치는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북핵을 실효적으로 억지하려면 미국의 전술핵무기 재반입도 적극 검토해야 할 때다.

 사드 배치는 국제정치의 기본인 안보주권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중국은 우리의 사드 도입을 내정 간섭 수준으로 반대하고 있다. 러시아도 중국에 편승해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표면만 보면 사드를 놓고 한반도에서 북·중·러 대 한·미·일의 냉전형 대결구도가 재연된 모습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로 한반도 평화가 파괴되면 동북아 현상유지가 목표인 중국과 러시아의 국익도 크게 훼손된다는 걸 두 나라는 인식해야 한다. 반면 사드가 한국에 배치되면 중·러의 한반도 안정 우선 정책도 힘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중국과 러시아에 이런 사실을 인식시켜 사드에 기반한 북핵 억지 체제에 공감대를 확산시켜야 한다. .

 우리 외교 당국은 최근 AIIB 가입이나 러시아 전승절 행사 참석 같은 주요 현안마다 시간을 끌다 골든타임을 놓치고 말았다.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1%가 지지하는 것으로 나온 사드 도입조차 망설임을 거듭하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안 된다. ‘역대 최상의 외교를 하고 있다’는 외교부의 자랑에 누가 동의해줄 것인가.

전옥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전 국정원 제1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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