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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청, 페루와 핫라인 … "이완구 어렵다" 보고가 결정타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공관서 칩거한 이 총리 사의를 표명한 이완구 총리가 21일 오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 2층 테라스를 걷고 있다. 이날 이 총리는 모든 공식 일정을 취소하고 공관에 하루 종일 머물렀다. [사진 문화일보]

“마치 온 국민이 불판 위에 이완구 총리를 올려놓고 굽는 형국 같았다. 본인이 무척 힘들어했다.” 이완구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사실이 전해진 21일 새벽 이 총리의 측근은 힘없이 말했다. 자진사퇴의 길을 택하기까지 이 총리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 말이었다.

 지난 9일 ‘성완종 리스트’가 처음 공개된 뒤 “총리직 수행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버텨 온 이 총리가 갑작스레 사의를 표한 것을 두고 새누리당 안팎에선 여러 뒷얘기가 나왔다. 김무성 대표 등 당 지도부는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상황에 밀린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해석도 있었다.

 이 총리는 야당의 파상공세가 취해진 지난 13~16일 국회 대정부질문 때도 자신을 변호하는 데 굽힘이 없었다. 본회의장을 함께 지킨 한 국무위원이 “힘드시지 않으냐”고 묻자 “나는 문제될 게 전혀 없으니 걱정 말라”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16일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의 독대 이후 분위기에 변화가 생겼다. 회동 결과를 두고 “박 대통령이 순방을 마친 뒤 귀국하면 이 총리가 경질될 것”이란 해석이 뒤따르면서다. 이 총리 주변 인사들은 “이 총리가 지난 주말(18~19일)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새누리당 핵심 당직자는 “특히 충청 지역 의원들이 전한 지역 민심을 듣고 이 총리가 거취를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충청 지역의 한 의원은 “본인은 결백하니 억울함을 풀고 싶었겠지만 당내, 야당, 충청 지역 분위기 등을 여러 통로를 통해 전해 듣고 스스로 국정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결론에 이른 것 같다”고 했다. 극에 달한 여당 내의 보이지 않는 압박과 야당의 해임건의안 제출 전략이 사의 표명의 주요 원인이라는 해석엔 이 총리 측도 이견이 없다.

 취임 63일 만에 이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지난 20일, 여권의 움직임은 종일 긴박했다. 이날 오전 9시30분 서울 관악구에서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당 지도부는 “대통령은 ‘귀국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대통령이나 당, 이 총리 모두에게 시간을 끄는 게 득 될 것이 없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 이후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4·29 재·보선 사전투표가 시작되는 24일 이전 사퇴하는 게 좋다는 구체적인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비슷한 시간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들은 이 총리의 사퇴를 요구했다. 이날 오후 이런 당내 의견이 핵심 당직자를 통해 청와대 인사에게로 전달됐다. 여기에 이 총리를 지지하던 친박계 인사들의 ‘포기 선언’이 보태졌다. 20일 오후 이 총리와 가까운 당내 친박계 인사 몇 명이 저녁식사를 함께한 자리에선 “더 이상 이 총리를 보호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얘기가 나왔다. 한 참석자가 이를 가감 없이 이 총리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순방지인 페루(리마)와 서울 청와대 간 핫라인이 기폭제가 됐다는 말도 나온다. 정치권과 시중의 여론을 취합한 청와대 관계자가 페루 쪽에 어려운 상황을 전달해 이 총리의 사퇴를 기정사실화했다고 한다.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이 총리가 박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의를 표명했다고 귀띔했다. 20일 오후 9시쯤(페루와의 14시간 시차를 감안할 때 이때는 오전 7시)이었다고 한다. 이후 페루 현지와 서울 청와대, 새누리당 지도부 간 논의를 거쳐 자정 무렵 이 총리의 사의 표명 사실이 대외적으로 공개됐다.

 김 대표는 21일 인천 서-강화을 지역 재·보선 지원 중 기자들과 만나 야당의 태도를 비판했다. 그는 “모양을 갖춰 그만둘 수 있도록 (이 총리) 본인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마지막 도리인데 쫓기듯 사의를 표명해 마음이 아프다”며 “(야당이 대통령이 귀국하는) 2~3일을 참지 못하고 너무 과하게 정쟁으로 몰고 간 것은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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