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영기업체의 「이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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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투자기관 관리기본법 에 의해 신설되는 25개 국영기업체의 이사장 내정자 명단이 2일 보도되었다. 정부가 전액 또는 자본금의 50%이상을 출자한 국영기업체의 이사장에는 전직각료, 예비역 장성들이 대거 기용되었다.
이 같은 인사내용을 두고 세간에서는 여러 가지 얘기가 나오고 있다. 민정당에서는 12대 국회의원의 공천문체와 관련, 구구한 추측을 하는가하면 야당에서는 『사람을 소화하기 위한 위인설관의 인상이 짙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기관에 비상임 의결기관을 둔 것 자체가 옥상옥』 이라는 비판도 있고, 『기업성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이사장에 과연 적격 인사들이 기용되었는가』하는 반응도 있다.
임기3년의 정부투자기관 이사장은 해당기업의 경영목표와 예산·자금 등 업무전반에 관한 의사결정 기관의 의장으로서 집행기관을 견제하는 기능을 맡게 된다. 이들에 드는 비용은 연4천 내지 5천 만원에 이를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
법이 정하고 있는 기능을 잘 수행해서 부실운영으로 말썽이 끊이지 않고 있는 국영기업체의 운영개선에 기여한다면 사무실과 승용차에 월70만원 정도의 급료란 큰비용이라고 볼 수는 없다.
새로 이사장으로 임명된 사람들이 법이 정한바 구실을 다할지도 그렇지만 집행기관의 장외에 이사장을 두는 제도가 과연 얼마나 경영합리화에 도움이 될지는 이제부터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새 제도를 두고 많은 국민들이 위인설관 모는 옥상옥이 아닌가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정부는 알아야 할 것이다.
「작은 정부」를 실현한다고 해서 감강때문에 정부 각부처가 진통을 겪었던 게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정부가 기구축소를 단행한 것은 물론 예산을 절감하고 업무의 중복을 피함으로써 효율적인 행정을 펴려는 것이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국가기능자체를 축소시켜 민간의 자발적 의지를 북돋우는데 있었다.
국영기업체의 이사장제도가 이런 의도와 어떤 조화를 이룰 것인지 궁금하다.,
중앙부처의 기구가 확대되고 복잡화하면 지방의 말단 행정기구가 제구실을 못한다는 것은 우리자신이 경험한 바다.
가령 중앙관서의 국·과가 제각기 업무관계 지시를 하는 바람에 가뜩이나 인원 부족한 읍·면·동에서 정상업무를 보지 못하거나 업무량 폭주 때문에 엉터리 보고를 한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파킨슨」 의 『확대는 복잡화를 뜻하고 복잡화는 노후의 조짐』 이라고 한 말은 여러 모에서 음미할 만 하다.
국영기업체의 새 이사장에는 낯익은 얼굴들이 많다. 능력은 있으면서 엉End한 사건에 휘말려 도중 하차한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 국가를 위해 기여할 기회를 준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이사장이 제구실을 하려면 집행부와의 불협화음이 예상되고 반면 한가한 명예직으로만 여긴다면 국민의 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국영기업체는 비 능률과 관료적 폐단이 많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단순한 위인설관이 아니라 국영기업의 경영개선에 보탬이 되는 제도임을 증명할 수 있도록 새로 임명되는 이사장들의 분발을 당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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