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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창극칼럼

언제까지 줄서기 할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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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전문가다. 만일 물리학 문제라면 아인슈타인이 서 있는 줄에 선다면 옳은 선택이다. 그가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지금 서울대 젊은 교수들이 진위 검증을 하자고 나섰다. 교수들은 이틀이면 진위를 알 수 있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황 교수 측이 뒤늦게라도 검증에 응하겠다고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지금까지 미룬 것이 잘못이다. 물론 다음 연구에 지장이 있으니 다음 봄에 후속 논문으로 진실을 보이겠다는 것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문제로 온 국민이 떠들썩하다면 그 의구심을 풀기 위해서도 전문가들에게 검증을 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그 논문이 진실에 기초했다면 무엇이 두려우랴.

검증을 제기한 서울대 소장 교수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황 교수 논문이 발표되었을 당시에 전문가로서 그 논문을 검증해 보는 것이 마땅하지 않았을까. 그때는 조용히 있다가 뒤늦게 검증하자고 하니 이해가 안 간다. 그 당시는 대중의 박수 소리에 기가 죽었었는가. 의심이 들었다면 과학적 진실을 위해 벌써 검증을 시도했어야 한다. 'PD수첩'이 문제를 제기한 후에야 검증을 하자고 나선다면 서울대 과학자들은 비전문가인 방송국 PD보다도 이 분야에서 못하단 말인가.

빨간 주머니, 흰 주머니 중 하나를 선택하려면 더 많은 데이터에 기초해야 한다. 더 많은 관찰을 해야 한다. 이런저런 의문점을 제기하고 서로 소통해야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기가 없는 쪽의 발언도 보호해 주어야 한다. 그런 사람들로 인해 토론이 활성화되고 진실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결의 원칙에서 소수자 보호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특히 유명인이나 영향력이 있는 인물들은 대중의 인기를 잃을까봐 못 이기는 체 대중의 요구에 휩쓸려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렇지 않지만 여론 때문에 할 수 없어서 …." 특히 전문가들이 이런 생각을 할 경우에는 더욱 위험한 상황을 만든다.

인터넷은 이러한 토론에 유익한 도구다. 그런데 우리의 인터넷은 소통이 아니라 줄서기를 강요하는 데에만 이용된다. 다른 줄에 선 사람을 손가락질하며 비난한다. 일부 언론도 마찬가지다. 황우석 문제로 자기 쪽에 줄을 서지 않으면 애국자가 아닌 것처럼 몰아간다. 이 기회에 반대쪽을 박살 내자는 식으로 나간다. 그런 언론한테 휘둘려야 되겠는가.

우리는 정말로 어리석은 줄서기를 끝내야 한다. 기생충 알 김치 파동, 촛불시위, 조류 인플루엔자 파동도 마찬가지다. 헨더슨이라는 정치학자는 한국 정치를 '회오리 바람의 정치'라고 했다. 한번 바람이 불면 회오리 속으로 휩쓸려 가듯 온 나라가 휩쓸린다. 전두환 정권의 탄생을 지켜본 주한미군의 한 장군은 한국민의 속성을 한 줄로 서서 몰려다니는 '들쥐'같다고 했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말인가.

보통사람들인 우리들은 이제 더 이상 줄기세포 문제로 줄서기를 하지 말자. 모르면 어느 한쪽에도 줄을 서지 않는 것이 옳다. 이 문제를 애국과 비애국, 보수와 진보 문제로 접근해서도 안 된다. 이 문제는 어떤 가치판단도 배제해야 하는 순수 자연과학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문제는 과학자들이 결정해야 한다. 전문가가 무슨 결론을 내는지 기다리자.

문창극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