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말 버리기 상자' 어른들도 필요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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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에게도 ‘나쁜 말 버리기 상자’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20일 오후 부산시 부산일보 대강당. 부산여중 2학년 최다빈(14·여)양이 학교에서 사용 중인 ‘나쁜 말 상자’를 소개했다. “욕처럼 거친 말이 나오려 할 때는 교실 뒤편에 있는 나쁜 말 상자에 쪽지를 써서 버리는 거예요. 일주일에 한 번 열어 보고 친구들끼리 토의하는데 평소 우리가 쓰는 말에 대해 반성하게 돼요.” 최양은 “어른은 아이의 거울이라고 하는데 어른들도 나쁜 말은 상자에 버렸으면 좋겠다”며 “어른들이 바른말 고운말로 모범을 보여 준다면 우리들의 말투도 모두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본지와 국회 입법조사처가 공동 주최한 3회 인성 심포지엄의 주제는 ‘어른부터 바뀌자’였다. 이날 기조 발제를 맡은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은 “인성교육의 핵심은 교육자의 솔선수범”이라며 “온갖 미사여구와 훌륭한 프로그램으로 인성교육을 한다 해도 어른이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인성교육은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준하 한국청소년상담학회장도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 인성교육을 받아야 할 사람은 아이가 아닌 어른”이라며 “밥상머리교육처럼 어른들이 가정의 작은 실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심포지엄에선 인성교육 시행과 관련된 학교 현장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전달됐다. 부산 명동초 학부모회 박사련 대표는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투와 몸짓·표정까지 따라 하기 때문에 선생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선생님의 격려와 칭찬이 많을수록 마음이 건강하고 인성이 바른 아이로 자란다”고 말했다. 부산 당리중 강원옥 수석교사는 “학교 인성교육만으론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가정과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이 개발돼야 한다”며 “이벤트성이 아니라 사회 전역에서 몸과 마음으로 익히는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의화 국회의장 등 여야 의원 47명은 이런 문제의식을 담아 성인들의 인성교육을 국가가 지원하도록 규정한 ‘인성함양진흥재단법’ 제정안을 지난 16일 발의했다. 범국민적 인성 운동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성인 대상의 인성교육 활동을 펴는 게 목적이다. 올 7월 실시되는 인성교육진흥법은 초·중·고교생의 인성교육에만 국한돼 있다.

 정 의장은 “어른들이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 바른 인성을 기대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인성교육진흥법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한 성인들의 인성 함양을 위해 재단을 설립하고 지원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부산=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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