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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영(연세대교수·경제학)다시 이는 부동산 투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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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에 들어오면서 서울의 가락동·목동 등 일부 신개발 지역과 대전 등 지방 도시에서도 부동산투기가 다시금 일어날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달 실시된 서울의 한 인기아파트에 대한 분양신청 창구에는 투기성을 띤 가수요자들까지 상당수 몰려들어 창구는 큰 혼잡을 빚었다. 이들은 현재 민영아파트에 대한 분양방법인 채권입찰제 하에서 서로들 자신이 적어 넣는 채권의 액수는 남에게 보여주지 않으면서 남들은 얼마나 채권의 액수를 적어 내
는 가를 알아내려고 극심한 눈치싸움을 벌였다.
우리는 이러한 근자의 부동산투기 조짐을 보면서 자연히 76년부터 78년까지 3년 동안 계속되었던 경기과열 시기를 돌이켜 보게 된다. 그때는 중동건설로 막대한 외화가 들어왔으며 중화학공업에 대한 본격적인 투자가 이루어졌고, 정부는 통화량을 방만하게 과잉 공급하였었다. 그 결과로 일찌기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경기호황을 가져왔다. 가계·기업 및 정부가 모두 흥청대었고 들떴던 기간 이였다. 부동산투기가 극심하였고 자동차·에어컨·냉장고·텔리비전 등의 내구소비재가 동이 나서 프리미엄을 받고 거래가 이루어졌다.

<주효한 안정정책>
그러나 이러한 프리미엄시대의 바로 뒤에 엄청난 경제적인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였다.
79년에 2차석유파동이 몰아닥친 것이다. 그후 82년까지 햇수로는 4년 동안 우리경제는 60년대 초엽에 경제개발계획을 실시하기 시작한 후 20년만에 처음으로 극심한 경제난국을 경험하게 되었다. 80년에는 GNP의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나타내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79년부터 82년까지 4년 동안 혹심한 시련을 겪었던 주된 원인은 석유파동이 직접적인 요인이 되기는 하였으나보다 원천적인 이유는 프리미엄시대의 방만한 경제운영과 이에 따른 부동산투기의 확산으로 정상적인 경제기능이 크게 마비된 데 있었다.
정부는 79년4월「경제안정화종합시책」을 발표하고 그 동안의 고도성장과정에서 빚어졌던 수많은 부작용을 바로 잡으려고 시도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물가안정에 가장 높은 우선 순위를 두었다.
이는 과거 20년 동안의 경험에서 얻은 뼈저린 교훈으로서 물가의 안정 없이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전적으로 불가능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제안정 최우선정책이 79년 이후 꾸준히 지속되어온 결과로 83년 이후부터는 물가가 현저하게 안정되었고 국제수지의 적자도 크게 개선되었으며 경제성장률도 높은 수준에 달하였다.
즉 83년에 GNP의 성장률은 9·2%나 되었고 도매물가는 오히려 떨어져 마이너스0·8%의 상승률을 보였으며 경상수지의 적자폭도 16억 달러로 크게 줄어들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나 해방이후 거의 4O년 동안이나 지속되어온 인플레이션에 대한 국민일반의 기대감
을 2, 3년의 물가안정에 의해 불식시킬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앞으로 보다 장기간 물가가 안정될 때 사람들은 이를 점차로 믿게될 것이다. 또 물가 지수만 보고 물가오름세 심리가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최근에도 발견하는 것처럼 부동산투기의 소지가 그대로 남아있는 한 실질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아무리 물가가 안정되었다고 할지라도 옆에서 부동산투기로 어떤 사람이 거액의 불로소득을 하루아침에 얻을 수 있다면 물가안정은 그 진정한 뜻을 잃게 되며, 이를 보고 물가오름세 심리가 불식되었다고 한다면 나무 하나 하나는 보되 큰 숲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공급, 수요 못 따라>
부동산의 투기가 초래하는 온갖 부작용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열심히 일한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관념이 허물어진다는 것과 국민일반의 내 집
마련이라는 가장 소박한 꿈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인데, 이는 경제적인 차원을 떠나서 사회안정을 위해 매우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사회내의 극소수가 부동산투기로 거액의 불로소득을 얻을 때 대다수의 선량한 국민들은 엄청난 피해를 보게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회전체는 그 기초부터 흔들리게 된다.
부동산투기로 거액을 얻을 수 있는 현실은 아직도 우리가 자본주의의 극히 초보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어떤 윤리나 정신이 경제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 그 자체에 모든 것을 내맡기고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처럼 백해무익한 부동산투기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는 인구의 도시집중, 핵가족화 등으로 주택이나 토지에 대한수요는 급속히 늘어나는데 반하여 집을 지을만한 택지의 부족, 주택건설의 부진 등으로 공급이 뒤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주택이나 토지에 대한 수요가 공급보다 더 큼으로써 부동산의 가격은 상승하게 마련이며, 따라서 부동산투기는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극히 유리한 것이다.
이를 나타내는 지표로서 83년 우리 나라 도시의 주택보급률은 53·7%로 도시민 둘 중 하나는 집이 없는 사람이다. 또 65년부터 80년까지의 기간 중 소비자물가는 8배, 도시근로자소득은 28배가 상승하였다는데 비하여 주택가격은 39배, 택지가격은 무려 1백8배나 뛰었다.
이렇게 볼 때 경제교육이나 경제의식 개혁을 통해 부동산투기를 막을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이며 근본적이고 원천적인 대책이 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우선 지적하여야 할 것은 부동산문제는 가격기구나 시장기구을 가지고 해결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의·식·주 및 보건은 국민들의 가장 기본적인 수요이므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만 되는 영역이다.
한 예를 들어 토지의 공공개발이나 용도 변경으로 인하여 주변의 토지가격이 상승하였다면 여기서 발생하는 이익은 마땅히 세금으로 거둬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이익은 세금으로>
다른 하나는 주택건설을 경기부양의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동안 늘 전체국내경기에 따라서 부동산투기 억제책과 주택경기활성화조치가 번갈아 가며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수 차례 경험하였다. 그러나 부동산투기억제는 이렇게 가볍게 다루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므로 반영구적으로 지속되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볼 때 부동산투기억제는 대도시로 인구가 집중하는 것을 막고 지방분산을 꾸준히 추진함으로써만이 순리에 의해 해결될 수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그 동안 정부가 7O년대 말엽부터 구상해온 투기의 우려가 있는 지역에 대한 토지거래신고제나 더 심한 경우에는 토지거래허가제의 실시, 민간이 아니라 정부가 직접개발대상토지를 매입, 개발하는 공영개발방식에 의한 주택 및 택지의 공급확대, 양도소득세 등 세제의 활용 등을 들 수가 있다.
부동산 투기억제가 지니고 있는 사회·경제적인 중요성을 생각할 때 정부가 일대 결단을 내려 지속적으로 장·단기의 대책을 꾸준히 밀고 나가야만 할 것이다. 이때 비로소 국민 모두가 같이 살고 같이 번영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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