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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선 모든 정치자금 인터넷 공개 유권자 표로 심판 받게 만들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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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호 05면

‘성완종 리스트’ 수사에 착수한 대검찰청을 향해 방송카메라들이 줄지어 있다. [뉴시스]

‘성완종 리스트’가 정국을 강타하면서 검찰 수사와 정치의 상관관계에 대한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집권 3년차에 사정 드라이브를 거는 관행,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별건 수사 등의 문제가 자주 지적된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공기업의 자문을 위해 지난주 방한한 존 브라운리 전 미국 연방 검사장(버지니아주 서부지역)은 이런 국내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18일 본지와 인터뷰한 그는 “모든 정치인·고위공직자가 받은 자금 내용을 낱낱이 공개하고 공개 의무를 강하게 집행해야 한다”며 “액수가 크든 작든 모든 내용을 인터넷 등을 통해 공개해 유권자들이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홀런드&나이트 로펌의 워싱턴DC 사무소에서 화이트칼라 범죄 담당 파트너로 일하고 있다.
 
-과거 검사장 재직 시 이번 건과 비슷한 사건을 수사한 적이 있나.
“지난해 미국에서 큰 이슈였던 로버트 맥더널 전 버지니아 주지사 금품 수수 사건의 변호인으로 일했다. 주지사의 부인이 기업인으로부터 억대 금품과 골프 향응 등을 제공받은 사건이었다. 검찰은 주지사가 금품 등에 대한 대가로 기업인에게 특혜를 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금품 수수는 부인이 그 기업인과 적절치 못한 관계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나는 주지사가 위법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현재 항소 중이다. 검찰은 징역 10년을 구형했지만 2년이 선고됐고 재판부는 주지사를 보석으로 풀어줬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 존 브라운리 전 美 연방 검사장의 진단

한국 집권 3년차 사정, 흥미로운 관행
-한국엔 ‘집권 3년차 사정 드라이브’라는 게 있다. 대통령이 5년 단임제이다 보니 레임덕을 막기 위해 생기는 현상이다.
“그게 전통인가(웃음). 재미있는 관행이다. 미국에서도 연방 검사는 대통령이 임명한다. 나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임명했다. 내 후임자는 오바마 대통령이 임명했다. 어느 정도 정치적인 측면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지만 검찰은 누구를 수사할지보다 무엇을 수사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당적이 있다고 해서 나와 반대되는 정파를 타깃으로 수사하라는 게 아니다. 유권자의 뜻을 반영해 법 집행을 하라는 취지다. 임명권자의 뜻대로 움직이란 건 더욱 아니다. 미국 법무부와 검찰은 정치에 눈을 감는 기조가 있다.”

-주에 따라 다르겠지만 미국에선 판검사를 선거로 뽑기도 하지 않나.
“판사 선거는 극히 일부 주에서만 한다. 또 연방 판사가 아니라 주(州) 판사만 선거로 뽑는다. 나는 판사 후보가 정치자금을 모으고 선거운동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연방 판검사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의회가 비준동의한다.”

-주의 검찰총장은 선거로 뽑지 않나.
“그렇다. 판사와 달리 주 검찰총장은 투표로 선출하는 게 장점이 있다고 본다. 주민이 엄한 법 집행을 원하는 주가 있고 인권 측면을 더 중시하는 리버럴한 주가 있다.”

-성완종 사건에선 금품을 건넨 사람이 자살해서 간접 증거에 의존해야 한다.
“그런 건 살인 사건도 마찬가지다. 주변 정보들을 모으고 주변 인물들을 조사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이번 사건이 미국과 다른 점은 미국에선 정치자금을 모으는 것이 합법이다. 내년 대선 후보들도 천문학적인 액수를 모으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대가로 뭘 해줬느냐 하는 점이다. 한국도 이 관점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어떤 목적으로 제공됐고 돈을 받은 정치인이 어떤 특혜를 줬는지를 알아내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엔 ‘별건 수사’라는 게 있다. 본 수사와 관련 없는 내용으로 수사 대상을 압박한다.
“검사들이 가끔 너무 많은 걸 뒤지긴 하지만 상급자들과 상의해 합당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엔 플리바기닝(plea-bargaining)이란 제도가 있다. 사실대로 말하거나 본건과 다른 건에 대한 얘기를 털어놓으면 형량을 줄여주는 제도다. 교화의 첫 단계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다. 법정에 나와서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게 중요하다. 플리바기닝은 ‘봐주자’라는 개념이 아니라 범죄혐의자가 책임을 인정하게끔 하는 제도다. 미국에선 90% 이상의 형사 사건이 플리바기닝으로 해결된다. 매우 적은 수의 사건만 재판까지 간다고 보면 된다.”

미국선 유죄 판결 나와야 공직 사퇴
-한국에도 정치자금법이 있지만 문제가 반복된다.
“자금 거래의 투명성이 치밀하게 담보돼야 한다. 예외 없이 모든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관계 기관에 보고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미국의 경우 큰돈을 주고받더라도 홈페이지나 언론에 미리 공개되면 문제가 안 생길 수도 있다. 유권자들은 그 적절성을 판단할 것이고, 다음 선거 때 참고할 것이다.”

-300만원 이하의 후원자는 공개 의무가 없는 조항이 악용되기도 한다.
“미국 연방법도 분기별로 1인당 2800달러로 제한하고 있다. 물론 후원회(PAC) 같은 추가 후원 통로가 있긴 하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모두 정치와 돈의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정치인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결정을 해야지 사적인 결정을 내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 연방대법원은 대기업의 정치자금 제공을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자기들의 안건을 추구한다는 데 단순히 돈을 많이 쓴다고 막으면 안 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그래서 이것을 언론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판단했고 타당한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비난을 많이 받고 있지만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으로 한국의 국무총리는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미국에선 유죄 판결이 나와야 사퇴한다. 선거자금 문제로 기소돼 있는 로버트 메넨데스 상원의원이 그 예다. 기소란 건 그냥 의혹에 불과하다. 그런 범죄가 실제로 저질러졌는지 아직 분명한 게 아니다. 메넨데스 상원의원은 재판에 출석하며 의원직을 유지할 계획이다. 그의 지역구인 뉴저지주의 유권자들도 문제를 삼지 않는다. 물론 유권자들이 그만두라고 항의하면 정치적으로 자리를 유지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된다.”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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