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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성완종 막으려면 비용 처리 투명해지게 법 고쳐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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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호 07면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완구 총리가 지난 16일 나흘간의 대정부 질문을 마치고 굳은 표정으로 국회를 나서고 있다. 김성룡 기자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짚어보자.
 ▶최진우=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제도 차원에서 보자면 현행 정치자금·선거운동 관련법이 규제 일변도라 불법 자금을 양산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과거 정치권 비리가 극심해 이런 법들이 생겨나게 된 배경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관련 법규가 뭘 못하게끔 금지행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건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임성학=지금 나오는 정치자금 수수설은 과거 몇 십억원 단위에 비하면 규모가 작아졌다. 과거보다 돈 덜 쓰는 선거가 자리 잡은 건 확실하다. 하지만 현행 법규를 지키면서 제대로 선거운동 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제2의 성완종을 막으려면 선거 비용 규정을 보다 현실화해 비용 처리가 투명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 이상 정치인들이 불법과 합법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모습을 안 봤으면 좋겠다.

[정치개혁, 지금이 골든타임] <상> 선거구 통폐합 <중> 공천 개혁 <하> 전문가 진단

 -개인적 탐욕보다 제도의 문제인가.
 ▶임=물론 불법 선거자금을 주고받은 건 확실히 잘못된 일이다. 자칫 정권이 결딴날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과거엔 몇 십억원씩 받아 선거 비용으로 일부 쓰고 나머지를 착복하는 방식이었다면 요즘은 전적으로 부족한 선거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부정한 행위라는 생각이 무뎌진 게 아닌가 싶다.

 -이번 파문으로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더욱 심해지게 됐다. 정치 불신의 원인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최=정치인에 대한 불신이나 야유는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다. 국민 다수의 요구와 정치권의 대응 간 괴리가 큰 탓 아니겠나. 서구의 전통적 양당제 국가에서 최근 등장한 제3정당들이 세력을 얻고 있는 것 또한 금융위기나 양극화, 청년실업 등에 기존 정치권이 해답을 내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임=과거엔 정당이 국민 의사를 표출하는 유일한 독점 채널이었다. 하지만 현재엔 시민단체·언론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어 정당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또 한국 국민은 유독 정치에 관심이 많다 보니 욕심도 많아 기대 수준이 높은 것 같다.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발간하는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에서 한국이 세계 21위로 나온 걸 보면 그렇게 후진적이지 않은 편이다.

“정치 능력 부족이 정치의 사법화 초래”
-정당학회가 최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등을 놓고 ‘정치의 사법화’ 문제를 제기했다.
 ▶임=가장 걱정되는 게 정치의 사법화다. 국가 차원의 정치적 해결능력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다. 국회에서 다양한 문제를 공론화하고 새 논리를 발견해서 국민에게 홍보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게 민주주의다. 그런데도 점점 의원이나 정당들이 국민 정서에 반하는 사안에 대해선 정치적 해결을 쉽게 포기하고 사법부로 판단을 넘기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굳이 판단 안 해도 될 문제까지 깊이 개입하게 만들었다.

 -결국 제도 개선과 정치불신 해결 등이 한국 정치의 개혁 과제가 아닌가 싶다. 민심을 대표할 국회의원의 적절한 규모부터 이야기해보자.
 ▶최=참 어려운 문제다. 국회의원 숫자 늘리자고 하면 국민은 ‘줄여야 할 판에 무슨 소리냐’고 한다. 하지만 이런 국민 정서만 좇다 보면 개혁을 위한 현실적 방안들이 발목 잡혀 버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선 의원 정수를 늘리지 않고는 방법이 없다고 하질 않았는가. 정치권이 국민을 설득할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30~50석 늘리는 수준에서 절충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임=의회가 정치적 능력을 회복하려면 대표가 더 많은 건 좋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국민은 ‘국회의원들이 하는 일 없이 세비만 타 간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국회에 들어가는 총예산은 그대로 고정하고 수만 늘리자고 하면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현재 다양하게 논의 중인 정치개혁 현안 중 가장 먼저 도입돼야 할 제도를 꼽는다면.
 ▶최=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상당히 매력적인 제도다. 반면 오픈 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는 다소 미심쩍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정당은 각각의 정체성을 가진 조직인데 후보 선출을 왜 국민에게 물어봐야 하는지 모르겠다. 경선에서 이기기 위해 모든 국민을 만족시키려 하면 정당 간 차별성이 없어진다. 그러면 다양한 입장을 대변할 창구가 줄어들게 된다. 한국은 정당 가입자보다 시민단체 가입자가 더 많은데 이 제도를 시행하다 보면 그런 현상이 더 심화되지 않을까. 선관위가 예비선거를 주관하면 선거 비용을 모두 국가 예산에서 충당해야 하는 점도 국민이 알 필요가 있다.
 ▶임=지구당 부활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당의 기본적 기능은 국민과 정부 간의 연결 통로 역할이다. 2004년 정치개혁에서 지구당 폐지를 결정하면서 그 통로를 잘라버렸다. 물론 과거 지구당이 동원·청탁 등의 문제점을 드러냈지만 그래도 이를 없애면 국민과 정부를 연결하는 풀뿌리 조직이 없어지는 거다. 그러다 보니 국민의 의사가 잘 대표되지도 않고, 현직 의원들만 점점 선거에서 유리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오픈 프라이머리는 충분히 시행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걸 법제화해서 모든 정당에 적용하는 건 부적절하다. 새누리당이 이 제도를 도입해 잘되면 다른 당은 하지 말라고 해도 쫓아올 거다.

 -공천개혁도 시급한 과제다.
 ▶최=각 정당의 공천 제도에 일관성이 없다. ‘이 정당의 후보 선출 방식은 이렇다’라는 식으로 각인이 안 된다.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한 룰을 가지고 제대로 시행하는 게 중요하다.
 ▶임=오픈 프라이머리의 단점은 현직 의원에게 굉장히 유리한 제도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장점으로도 볼 수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를 채택한 미국의 경우 하원 재선율이 90%나 된다. 그러다 보니 한 의원이 몇 선째 해당 상임위에서 같은 사안을 다루면서 높은 전문성을 갖게 된다는 평가도 있다.
 ▶최=오픈 프라이머리가 신인·여성 후보에게 불리하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이를 보완하기 위해선 선거운동 기간을 지금보다 늘리고 일상적인 정치활동의 기회도 많이 부여해야 한다. 현역 의원은 공식 선거운동 말고도 지역구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만큼 공정한 경쟁을 위해 선거 운동의 제한을 대폭 푸는 게 급선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성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최=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실시되면 경상도에서 야당 의석이 나오고 전라도에선 여당 의원들이 당선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만 해도 지역주의가 완화되는 첫걸음이라 할 수 있지 않겠나. 제도 도입 시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비례대표 후보를 어떻게 선출하느냐다. 이 규칙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으면 당내 계파싸움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릴 수 있다.
 ▶임=너무 큰 기대를 해선 안 될 것이다. 호남에서 새누리당 후보 두세 명이 당선된다고 해서 지역주의가 없어질 거라곤 생각 않는다. 이정현 의원처럼 지역구에서 오래 터를 닦고 활동하는 것을 당이 지원해 줘야지 지나치게 선거공학적으로만 접근하면 안 될 것이다. 비례 후보 선출을 전국에서 권역 단위로 낮출 경우 또 다른 지역주의 투표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선거구 획정은 가장 뜨거운 감자다. 농촌 지역 의원들은 인구 비례만으로 기준을 삼아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임=여기에 정답이란 없다. 결국은 가치의 문제다. 인구 비례성을 높일 것인지, 지역 특수성이나 문화·역사를 중시할 것인지에 대해 국민적인 합의를 이루면 된다. 이런 논의가 국회에서 공론화돼야 국민이 판단할 텐데 (국회가) 그런 일을 안 하니까 문제다.
 ▶최=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함께 도입해 농촌 지역구 출신에게 비례 의석을 배분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정치 개혁 성공 여부는 국민에 대한 설득”
-승자 독식이 문제로 지적되는 현행 소선거구제 방식은 우리 정치에 맞는 제도인가.
 ▶최=승자 독식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표로 민의가 왜곡될 수 있다는 문제 때문에 권역별 비례대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소선거구제만으로 이뤄진 선거제도는 그다지 민주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보완해야 한다.
 ▶임=소선거구제는 안정성·책임성이 강하고, 비례대표제는 비례성·반응성이 높은 제도다. 많은 국가에서 처음엔 소선거구제가 주류였다가 나중에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경향을 보인다. 현재 전 세계 선진국 60%에서 비례대표를 더 많이 뽑고 있다. 하지만 한국 국회의 비례대표 의원과 지역구 의원을 비교해 보면 지역구 의원의 퍼포먼스가 훨씬 좋다는 분석도 나오는 만큼 지역구 의석을 일정 비율 유지하는 게 좋은 방향이 아닐까 싶다.

 -정치개혁의 성공 관건은 결국 국민에 대한 설득이다. 쉽지 않아 보인다.
 ▶최=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나치게 정치를 희화화하고 부정적 측면만을 부각시키는 보도 관행이 있다. 정치는 공공재 분배와 갈등 해소라는 필수불가결한 기능을 갖고 있는 만큼 정치 자체가 불필요하고 정치권은 사악한 집단이란 식으로 덧칠하면 국민의 부정적 인식과 무관심이 깊어진다. 다같이 노력할 부분이다.
 ▶임=기본적으로 학계·시민단체·언론이 함께 정치 개혁에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 정치권도 자체 개혁과 병행해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는다면 국민의 이해를 받을 것이다.



최진우 교수 미국 워싱턴대 정치학 박사.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사회과학대학장을 맡고 있다. 한국유럽학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정치학회장을 맡고 있다.

임성학 교수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 정치학 박사.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회 정치쇄신자문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정당학회장을 맡고 있다.

정리=이충형 기자 ad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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