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비, 미세먼지 1836억원어치 씻고 물값 32억원 벌어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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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잦으면 마을집 지어미 손이 커진다'.
농작물 생육이 활발한 시기에 비가 자주 오면 가을걷이가 풍성해져 아낙들 인심이 후해진다는 뜻이다. 봄비가 가져다주는 풍요에 주목한 속담이다. 이런 봄비의 가치를 현대 과학은 구체적인 금액으로 측정해낸다. 실제 기상청은 지난달 31일 전국에 평균 4.5㎜의 비가 내리자 "이번 비는 2500억원의 가치가 있다"고 발표했다. 기상청 발표대로라면 하늘에서 엄청난 현금이 쏟아진 것이다.

기상 변화의 경제적 가치를 따져보는 일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지금까지 기상정보는 정확한 예보를 통해 기상재해를 줄이는 쪽에 포커스가 맞춰져 왔다. 얼마나 정확하게 예보했는지에 주목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기상정보가 사회·보건·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국립기상과학원 김백조 응용기상연구과장은 "태풍이 온다고 하면 시설물 피해 등만 걱정했지 수자원이 늘어나고, 공기가 깨끗해지며 적조현상 해소 같은 긍정적 효과도 있다는 점은 간과했다"고 말했다.

4.5mm의 비의 가치가 2500억원이라니. 이 액수는 어떤 공식을 통해 산출됐을까.
봄비의 경제적 가치는 기상청 소속 기관인 국립기상과학원 응용기상연구과에서 산출한다. 응용기상연구과는 비의 가치를 △수자원 확보 △대기질 개선 △산불피해 예방 △가뭄경감의 네 가지 측면에서 계산한다.

수자원 확보 가치는 5가지 변수 곱해 산출
수자원확보의 가치는 5가지 변수를 곱해 도출한다. 먼저 전국 48개 지점에서 강수량을 측정해 전국 평균 강수량을 구한다. 이 수치를 전 국토면적과 곱한다. 그렇게 되면 전 국토에 스며든 빗물의 양이 도출된다. 이 빗물 가운데 60%는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댐이나 저수지로 들어오는 물의 양은 40%가 되므로 0.4를 곱한다. 이렇게 들어온 물 가운데 별도 가공을 거치지 않고 바로 팔 수 있는 물은 36%이므로 0.36을 한번 더 곱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톤(㎥)당 용수가격 50.3원을 곱하면 수자원으로서의 가치가 계산된다. 지난달 31일 내린 비의 수자원 확보의 가치 32억 7000만원도 이같은 계산방식을 거쳤다. 이같은 계산법으로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수자원 확보를 통한 경제적 가치를 환산하면 연평균 1599억원에 이른다. 연평균 강수량이 220.3㎜이니 강수 1㎜당 수자원 확보의 가치는 7억3000만원인 셈이다.

수자원확보의 가치를 계산하는 방식도 시대를 거치며 진화했다. 2009년까지만해도 '물그릇 측정법'을 사용했다. 비를 받는 물그릇은 전국의 댐이다. 한국수자원공사가 관리하는 다목적댐 15곳과 용수댐 14곳을 대상으로 비가 오기 전과 오고 난 후의 저수량의 차이를 측정하고 여기에 톤(㎥)당 공급가격을 곱해 계산했다. 한국농어촌공사가 관리하는 저수지 3329곳도 물그릇이긴 하지만 용수를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는 이유로 계산에서 제외됐다. 김백조 과장은 "물그릇 측정법은 시차를 두고 흘러들어오는 물의 양을 계산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고,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물을 제외하고 국토로 스며든 모든 물의 가치를 반영하지 못해 새로운 계산방식을 2012년부터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적 효과 가장 큰 건 대기질 개선
빗방울은 내리면서 '세정효과(Washout effect)'를 통해 공기 중 오염물질을 씻어낸다. 비 온 뒤 공기가 맑아지고 시야가 탁 트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대기질 개선 효과를 수치로 도출하는 방법은 간단치 않다. 먼저 비가 내리기 전날의 대기오염 농도와 내린 뒤의 농도를 측정한다. 이때 환경부의 국립환경과학원에서 제공하는 전국 258곳의 대기질 정보를 활용한다. 이를 통해 미세먼지(PM10), 이산화질소(NO2), 일산화탄소(CO), 이산화황(SO2)이 각각 얼마나 줄었는지를 숫자로 도출한다. 이 각각의 숫자에 '오염물질 ㎏당 사회적 한계비용'을 곱한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대기오염 1㎏을 줄이기 위해서 지출했어야 하는 비용이다. 물질마다 비용이 달라 미세먼지 2만6837원, 이산화황 9233원, 이산화질소 8220원, 일산화탄소 6832원을 적용한다. 여기에 전 국토면적과 고도 1㎞를 곱한다. 오염물질 농도가 행성경계층인 고도 1㎞까지는 지표와 유사한 분포를 보이고 생활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미세먼지처럼 입자의 형태로 존재하는 물질과 가스의 형태로 존재하는 다른 물질들 간에 단위를 맞추기 위한 계산도 거쳐야 한다. 지난달 30일 대기중 미세먼지 농도는 112.1㎍/㎥ 로 측정됐으나 31일 비가 오자 4월 1일엔 이 수치가 43.8㎍/㎥으로 크게 줄었다. 이 농도 차 68.3에 사회적 한계비용과 국토면적, 고도를 곱하면 1836억원이라는 수치가 나온다. 국립환경과학원 송창근 과장은 "봄비의 가치를 측정할 때 가장 큰 액수를 차지하는 부분이 대기질 개선 효과이고 이 중에서도 미세먼지를 씻어낸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산불 뒤 복구하려면 ㏊당 541만원 들어
봄철엔 나들이객이 많아지면서 산불이 자주 일어난다. 봄 가뭄이 심해 숲이 건조할 때엔 산불 피해가 커지고 진화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봄 가뭄이 심했던 2009년의 경우 3~5월 사이에만 377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그 해에 일어난 산불의 66%가 봄에 집중됐다. 봄비의 경제적 가치를 따질 때 산불예방의 효과를 따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산불예방 효과는 비가 내리기 전 열흘동안 전국의 산불피해면적(㏊)에 산림피해 복구에 들어가는 비용을 곱해 산정한다. 산림복구 비용은 ㏊당 541만4000원을 계산한다. 이는 7년생 잣나무를 기준으로 ㏊당 나무가격 330만원과 풀베기·덤불제거 등에 들어가는 인건비 211만 4000원을 더한 수치다. 지난달 21~30일 사이 전국에서 일어난 산불의 평균 피해면적은 55.8㏊였다. 여기에 복구비용 514만 4000원을 곱하면 산불피해 예방의 경제적 가치는 3억원으로 계산된다. 31일에 4.5㎜ 비가 오지 않았다면 지출했어야 할 돈이다.

가뭄은 홍수와 달리 지속시간과 피해형태가 다양하게 나타나 홍수와 같은 피해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가뭄 경감의 효과는 조건부가치측정법(Contingent Valuation Methods)을 활용한다. 가뭄으로 받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액수(Willing to pay)를 측정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2009년 강원대 박상덕·김만재 교수가 국내 최초로 측정한 가뭄고통비용 2만8721원을 적용한다. 두 교수는 가뭄이 심했던 2009년 태백시내 100세대를 상대로 빨래·목욕·청소의 제한 같은 일상생활의 불편함에 대한 비용을 조건부가치측정법을 통해 도출했다. 삶의 고통을 계량화한 것이다. 김 과장은 "가뭄고통비용은 피해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직접 조사한 뒤 계량화한 것이어서 현재까지 가뭄 해소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산출하는 공식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비가 내리면서 가뭄지역에서 벗어난 가구수에 가구당 가뭄고통비용을 곱하면 가뭄 경감효과를 얻을 수 있다. 지난달 말 가뭄지역으로 분류된 곳에 있던 가구 가운데 24만 1058가구가 31일 내린 비로 가뭄고통에서 벗어났다. 이 가구 수에 2만8721원을 곱하면 가뭄해소 효과 69억 2000만원이 도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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