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납치 하수인 김규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신사장까지 북괴에 납치됐다니 내자신이 저주 스럽습니다. 지금도 최은희씨의 납치극에 가담한 것을 뼈저리가 후회하고 있습니다』
-홍콩거점 북괴 여공작원 이상희 (58) 의 사주를 받고 최은희를 홍콩에 유인한 죄로 징역 15년의 확정 판결을 받고 광주 교도소에서 복역중인 전 신필림 홍콩 지사장 김규화씨 (62).
78년 가을 법정에 섰을때와는 달리 6년의 옥고에 주름잡힌 김씨의 얼굴엔 참회의 빛이 스친다.
『이상희와 처음 만난 것은 지금부터 26년 전인 58년 가을 어느날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제가 근무하던 주택영단이라는 회사의 사장 부인이었지요』
바로 그날의 만남이 불행의 씨앗이 될줄 몰랐다며 김씨는 업보라며 체념 한다.
『이여인을 두 번째 만난 것은 13∼14년 전 홍콩에 잠시 들렸을 때였습니다. 우연히 이민국에 들렀다 만났던 것이지요. 그쪽에서 먼저 저를 알아보았습니다. 우리는 너무 반가와 함께 식사를 했어요. 그게 전부였습니다』
73년 신상옥씨의 부탁으로 신필림 홍콩 지사를 맡게 됐었다는 김씨는 이때부터 이상희를 자주 만났다고 털어놓았다.
이는 『졸업시험』 『욕망』『춘희』 등 영화의 시사 때마다 딸 코니 유 와 함께 나타나 영화가 끝나면 눈물을 지었고, 만날 때마다 돈벌면 귀국,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고 했으며 76년12월에는 딸 생일이라고 초대해 10여명의 중국인을 만나기도 한데다 그것이 모두 공작의 마수인줄 몰랐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심한 자금 압박 때문에 당시 이로부터 조금씩 빌어쓴 돈이 1만4천여달러나 됐어요. 이는 77년10월 갑자기 빚 독촉을 하더니 제가빈 돈이 북한으로부터 받은 공작금이라고 털어 놓았습니다. 무척 당황했지만 빚을 갚을 길이 없던 저로서는 이의 부탁에 응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최은희 초청장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지요. 10월이후 세번이나 부탁을 받았읍니다』 상사의 부인을 너무 믿었던 것이 납치극의 조연을 맡는 악연이 됐다는 김씨는 나머지 형기를 살며 죄값을 치르겠다며 울먹였다.<허남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