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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에 넘치는 소비생활로 주체못하는 생활의 쓰레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약력
▲44년 서울 출생 ▲66년 서울대문리대화학과 졸 ▲71년 미국 버지니아대 대학원 박사 ▲74∼현재 숙명여대교수
우리 집처럼 주부가 진솔하게 살림에 정성들이지 못하면 자연스레 엉성한 구석이 생겨난다. 집 안팎으로 제구실 못하는 물건들이 뒹구는 것도 그런 일 중의하나다.
일전엔 멈춰 버리고 잡는 나는 시계 라디오를 고칠 셈으로 가계에도 다녀왔으나 수리비가 턱없이 비싼 에 헛걸음으로 돌아왔다. 수리에 관한 요즈음의 나의 경험은 대체로 그러해서, 수리 후 보충도 없는 터에 오히려 새로 사는 편이 낫겠다고 결정을 한다.
쓰레기와 진배없으나 막상 버리기도 난감한 생활의 찌꺼기들은 물질의 풍요에 비례하여 이래저래 늘어만 간다.
도대체 버려야할 군더더기가 너무 많다. 동네 탓인지는 몰라도 조·석간신문을 펴려고 하면 낱장 짜리 광고지들이 주르르 쏟아진다. 각종 매체는 말할 것도 없고, 거리의 시야를 조잡스레 차지하고도 모자라 조그 만큼 틈도 없이 퍼붓는 광고의 세례, 먹고 마시고 입고 놀고 따위가 줄거리인 것은 혹시 세상 돌아가는 흐름인 것은 아닌가.
매일 매일 쏟아지는 홍수 같은 정보들은 오히려 사람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몸에 좋다는 것도, 몸에 나쁘다는 것도 하도 많은 세상이라 나 같은 사람은 차리리 그런 것들에 둔감하게 살아보리라 작정한다. 이렇게 똑똑해진 세상을 살면서 이것저것 하늘에 맡기리라 생각이 드는 것은 왠 일인지 모른다.
물질의 쓰레기들이 환경의 물·공기·땀을 오염시켜 우리의 건강을 해지고 있듯이 흘러 넘치는 정보의 과잉 또한 일면 사회적 공해로 둔갑하여 정신을 혼란시키고 지지게 하는 면이 없지 않다.
어쨌거나 컴퓨터를 동원한 정보의 수집과 활용은 GNP를 더욱 신장시킬 것이고, 우리의 사용 가능한 자원은 더욱 빨리 바닥상태로 떨어질 것이다. 가령 지구상의 금속자원만 하더라도 세계경제는 현재의 소비속도로 갈 때 앞으로 75년 내에 그 반을 소모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쯤 되면 갖가지 자원의 위기가 에너지 위기의 뒤통수를 치지 말란 보장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내버리는 폐기물은 분수 넘치게 많다.
쓰레기의 분리 식 수거도 못되는 형편이니 재생 가능한 찌꺼기의 효율적 처리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예컨대, 시내에서 하루에 쓰레기로 나가는 종이만 해도 얼마나 될까. 대수롭지 않게 살짝 바꾸어 새 물건 새 값이 매져지고, 과도한 광고에 파대한 포장으로 과소비 양상은 가열되는 것이 아닌가.
이쯤 해서, 현실감각은 단연코 모자랄지도 물질주의의 심화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
별다른 개량도 아니면서 이리저리 모양만 바꾸는 일은 그만 두고 표준모델이 설정됐으면 점잖게 지켜나가는 신중함도 돋보일 수 있을 것이다.
당장의 이윤추구와는 거리가 멀다 하더라도 옛것·헌것에 값 어지를 부여하려는 노력은 시도해 봄직하다. 귀중한 지면을 쓰레기 타령으로 일관한 셈이 됐지만 될수록 적게 버리고, 버리는 것이 재 순환 되도록 배려하는 일은 어쩌면 사람들의 세상을 보는 눈까지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일이라 믿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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