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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올림픽 "흑자론"의 허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KDI(한국개발연구원)는 88서울올림픽이 「경제성이 높은 흑자대회」가 될것이라는 매우희망적인 연구보고서를 내놓았다. 대회자체가 흑자일뿐더러 국제수지를 대폭 개선할수 있으며 수도 서울의 생활환경도 개선하고 실업자도 구제하고 나아가서는 나라경제 전체가 선진국으로 향하는 결정적인 전기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연구보고서를 아무리 읽어봐도 결론만 잔뜩 나열됐을뿐 도무지 그 결론을 끌어낸 논거를 찾을 수 없다. 심지어 『올림픽개최가 국가경제에 큰부담이 되고 많은 후유증을 남길 것이라는 우려는 올림픽에 대한 국민의 인식부족 때문』이라고 서슴없이 못박았다. 우매한 국민들이 내용도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흑자대회라면서 어느 정드흑자를 예상하는지, 국제수지가 5억8천6백만달러나 개선된다면서 외화수입이나 씀씀이가 어떤지, 전자시장이 2천억원이나 더 늘어 난다는데 무엇을 근거로계산해낸 것인지…. 궁금증만 더해주는 결론만의 나열이다. 걸핏하면 복잡한 수식과 갖가지이론적 배경을 동원해온 평소의 KDI태도와는 영 딴판이다.
물론 닥쳐올 일을 점치면서 숫자 좀 틀리는 것은 문제삼을게 못된다. 특히 외자수입의 결정적인 몫을 차지하는 TV방영권수입여하에 따라 매우 유동적인 형편이다.
KDI에 기대했던 것도 이런 숫자를 점쳐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정부가 못보는 시각에서,학자적인 양심과 전문가적인 식견에서 올림픽개최가 우리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 대응책은 무엇인가를 제시해주길 기대했었다.
돈문제만 해도 총비용 2조4천억원이 전체 GNP에 비교해서 별것 아니라는 식이다. 누가 그돈을 대고 어떻게, 어디에 쓰여지는가에 따라 엄청나게 달라질 경제적인 파급효과에 대한 언급은 없다.
정부자료에 따르면 88년대회 당시에 필요한 인원만 따져도 13만명이 넘고 2조4천억원의 대부분이 개최지인 서울에 쏟아 부어질텐데도, 이에 따라 누구나가 수도서울의 집중현상이 가속화될 것을 심각하게 걱정하는데도 KDI의 이번 보고서는 「서울의 생활환경개선」을 내세우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정부는 못믿어도 연구기관은 믿는 법이다.
특히 KDI의 경우 우리경제가 이만큼 성장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고 태국같은 나라는 이를 본떠서 최근 TDI라는 연구기관까지 만들었을 정도다.
그런 권위있는 KDI가 어쩌다 이런 논리는 없고 결론만 나열된 보고서를 내놓았는지 모를 일이다.
프랑스의 극작가「몰리에르」의 어느 단막극에도 『학자는 모름지기 결론을 유보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는데―. <이장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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