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 氣싸움 시장 혼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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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정부 금융정책의 쌍두마차인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가 금융 현안들을 놓고 사사건건 마찰음을 내고 있다.

특히 참여정부 들어 청와대의 정책 조율기능이 약해지면서, 재경부가 법령의 제정.개정권을 무기로 일방 독주하는 양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두 부처는 제도 개선부터 시장 대책까지 여러 부문에서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 시장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주택담보비율 인하=재경부는 최근 부동산 안정대책의 하나로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인정 비율을 감정가의 60%에서 50%로 낮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책협의 과정에서 소관 부처인 금감위는 "올 들어 은행의 가계대출 중 주택담보대출은 월 4천억~5천억원 정도로 많지 않으며, 주택담보대출 인정비율을 낮추는 것은 은행 영업을 지나치게 규제하는 측면이 있다"며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금감위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규제는 법령이 아닌 금융감독에 관련된 사항이지만, 재경부가 일방적으로 기정사실화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추인했다"고 말했다.

회계감사 정기교체=분식회계를 막기 위해 상장.등록기업의 회계법인을 6년 주기로 의무적으로 교체하는 내용의 관련 법 개정안을 마련하면서 재경부는 ▶기업의 감사위원회가 전원 동의하거나▶다른 회계법인과 공동감사를 받은 경우 예외를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금감위는 이런 예외규정이 대부분 기업에 빠져나갈 구멍을 제공한다며 예외없는 교체를 요구하고 있다. 재경부는 금감위와의 충분한 정책협의 없이 언론에 보도자료를 냈다.

증권시장 관련=재경부는 최근 증권거래소와 코스닥.선물거래소를 단일 법인으로 합치고 본사는 부산에 둔다고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금감위는 소외됐다. 금감위 관계자는 "이런 방식의 증시 통합은 정치적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게 금감위의 입장"이라며 "증권시장을 상시 감독하는 부처 의견을 한번 묻지도 않는 재경부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투신과 대한투신의 경영정상화 문제를 놓고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그동안 금감위에서 한투.대투 문제를 다뤄왔는데, 재경부는 최근 공적자금 추가 투입이 걸린 현안인 만큼 앞으로 직접 매각 작업에 나서겠다고 금감위에 통보했다.

어떻게 풀어야 하나=DJ정부는 금감위를 신설하면서 재경부와 금감위가 금융시장 정책을 협의해 처리하도록 했다. 그동안 두 부처의 정책 조율은 주로 '재경부 차관-금감위 부위원장'의 차관급 라인과 청와대 경제수석실의 금융비서관을 통해 이뤄졌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들어 금감위에 민간 출신인 이동걸 부위원장이, 재경부에는 옛 경제기획원 출신인 김광림 차관이 취임하면서 차관급 협의라인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재경부와 금감위의 중재역할을 해야 할 청와대 금융비서관 자리마저 없어졌다. 이렇다 보니 두 부처의 실무진들은 현안마다 직접 맞부닥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관료는 "사실상 같은 업무를 두 부처에서 나눠 하다 보니 실무자들 간에 마찰음이 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며 "어떤 방식으로든 정책 조정 라인을 서둘러 복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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