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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계 유재석' 양동근, 세번째 MVP 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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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농구계의 유재석’ 양동근(34·울산 모비스)이 또 프로농구 MVP가 됐다. 세 번째 MVP는 한국 프로농구의 새 역사다.

 올 시즌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통합우승을 이끈 양동근은 14일 서울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2014-15 프로농구 시상식에서 기자단 유효투표 99표 중 86표를 받아 김주성(동부·13표)을 제치고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양동근이 MVP가 된 것은 2006년과 2007년에 이어 세 번째다. 양동근은 역대 MVP 2회 수상자인 이상민(43·삼성 감독)과 서장훈(41·은퇴)·김주성(35)을 따돌리고 1997년 프로농구 출범 이후 처음으로 MVP 3회 수상자가 됐다.

 유재학(52) 모비스 감독은 “동근이는 김승현(37·은퇴)이나 이상민 같은 재능을 갖지는 못했다”며 “그러나 ‘최고가 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았고, 결국 대한민국 최고 야전사령관이 됐다”고 말했다.

 키 1m81㎝인 양동근은 용산고 시절엔 1m68㎝에 불과했다. 1년 후배 이정석(33·삼성)이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었고, 양동근은 벤치에서 박수치는 시간이 더 길었다. 양동근은 틈날 때마다 “1분이라도 뛰고 싶어도 못 뛰는 선수들이 있다. 뛴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고 말한다. ‘1분의 소중함’을 일찍 깨달은 그는 한양대를 거쳐 2004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모비스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양동근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전체 1순위 선수는 스포츠용품업체의 지원을 받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그는 예외였다. 양동근은 다른 팀 동기에게서 농구화를 얻어 신고 팀에 합류해야 했다.

“절박함과 독기로 농구를 했다”고 말하는 양동근은 프로농구 사상 처음으로 개인 통산 세번째 MVP를 차지했다. [사진 모비스·KBL·중앙포토]
양동근은 자신의 숙소 방 벽에 ‘성실’ ‘초심’이란 단어와 스티브 잡스의 명언을 담은 메모를 붙여놓고 각오를 다졌다. [사진 모비스·KBL·중앙포토]

 양동근은 “어릴 적 온 가족이 단칸방에서 살 만큼 가난했다. 절박함과 독기로 농구를 했다”고 회상했다. 모비스에 슈팅가드로 입단한 양동근은 이후 포인트가드로 전향하며 많은 고생을 했다. 2004년 모비스에서 룸메이트였던 위성우(44) 여자농구 우리은행 감독은 “동근이는 당시만 해도 부족함이 많았다. 유 감독님의 꾸지람을 많이 들었다”며 “동근이는 감독님의 지적사항을 메모한 뒤 방 벽면에 덕지덕지 붙여 놓았다. 10년 후 동근이가 훈련을 하는 걸 지켜봤는데 그 때 교정한 자세가 그대로였다”고 말했다.

 이도현 모비스 홍보팀장은 “양동근의 방은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의 방 같다”고 했다. 모범생들이 책상에 영어단어와 수학공식이 적힌 메모를 붙여놓는 것과 비슷하다. 양동근은 요즘도 유 감독이 지시한 패턴을 메모한 뒤 벽면에 붙여놓는다. ‘성실(誠實)’ ‘초심(初心)’ 이란 단어와 함께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명언인 ‘Stay hungry, Stay foolish’(늘 갈망하고 늘 우직하게)를 쓴 메모도 붙여놓았다.

 성실한 자세 덕분에 양동근은 ‘국민 MC’ 유재석(43)에 비교돼 ‘농구계의 유재석’으로 불린다. 오랜 무명 생활을 거쳐 최고 자리에 올랐지만 늘 겸손하고, 늘 혼신을 다한다. 유재석은 “내가 생각하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면 안되고, 그걸 벗어나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게 바로 혼신이다”고 말했다. 양동근은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태극마크를 달고 한국이 12년 만에 금메달을 따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쉬지도 못하고 프로농구 시즌을 맞은 그는 플레이오프 기간엔 밤새 잠을 못 이룰 만큼 힘들어했다. 하지만 고참이 흔들리면 팀이 무너진다는 생각에 참고 뛰었다. 그는 올 시즌 평균 34분56초를 뛰었다. 10개팀 선수를 통틀어 출전시간이 가장 길다.

 양동근은 3년 전 대표팀 훈련 때 같은 포인트 가드인 김태술(31·KCC)과의 대결에서 고전한 뒤 외박도 포기하고 밤새 개인훈련을 했다. 양동근은 종종 구단 식당 아주머니에게 스카프를, 버스 기사에게 티셔츠를 선물한다. 그리고 “더 비싼 선물을 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고 말한다. 양동근은 후배들로부터 가장 닮고 싶은 선수 1위로 꼽힌다.

 “항상 내일 은퇴하는 마음으로 뛴다”는 양동근은 “기량이 된다면 45세, 50세까지 선수 생활을 하고 싶다. 내년에는 아무도 이루지 못한 4년 연속 챔프전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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