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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정운찬 전 국무총리·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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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저 여인이 이삭을 주울 때에는

곡식단 사이에서도 줍도록 하게.

자네들은 저 여인을 괴롭히지 말게.

그를 나무라지 말고

오히려 단에서 조금씩 이삭을 뽑아 흘려서

그 여인이 줍도록 해주게.”

- 구약 ‘룻기’ 중에서

일부러 이삭을 흘려
가난한 이들과 나누라

경제적으로 불우했던 어린 시절 나는 스코필드(F W Schofield· 1889~1970) 박사가 등록금을 지원해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스코필드는 3·1운동을 주도한 민족 대표 33인에 더해 ‘제34인’으로 불리는 영국 태생 캐나다인이다. 그는 1960년대 경제 성장 과정에서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가속화하는 것을 보면서 한국에서는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눈꼽만치도 배려하지 않는다고 개탄했다. 그러고는 나에게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해 앞으로 더 악화될 빈부 격차를 줄이는 데 힘쓰라고 가르치셨다. 그때 스코필드 박사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바로 부자 보아스가 자기 밭의 보리 이삭을 일부러 흘려 가난한 이웃 룻이 줍도록 도왔다는 룻기다. 대서사시 구약에 포함된 룻기는 괴테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글’이라고 칭송했다. 룻처럼 힘든 이웃과 함께하는 추수가 절실한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룻기가 가진 울림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나는 박사님의 뜻대로 우리 사회의 동반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암초를 만날 때마다 나는 이 룻기를 읽고 또 읽으며 동반성장을 향한 중단 없는 항해의 힘을 얻곤 한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