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남자도 흔들리는 갈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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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글쎄, 최신 세태를 반영한다는 TV광고를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승용차를 몰고 가던 남자가 길가에 서있던 신차를 보고 차를 멈춘다. 사이드미러를 통해 신차를 바라보던 남자는 갑자기차를 후진시키더니 신차 옆을 다시 한번 내달린다. 차가 물웅덩이를 통과하는 바람에 신차는 물을 흠뻑 뒤집어쓴다(사진 (下)).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 남자.

새로 나온 싼타페(현대자동차) 광고의 소재는 남자의 질투심이다. 여자의 질투를 소재로 한 광고는 많지만, 남자의 질투를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처음이라는 것이 광고계의 분석이다. 광고대행사 이노션의 이대철 부장은 "보통 여자의 질투가 더 강하다고 생각하지만, 남자에게도 드러내지 않는 질투심이 존재한다"고 제작배경을 설명했다.

이처럼 감춰진 남성 심리를 수면 위로 끌어낸 광고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강하고 완전무결한 남자 대신 허점을 인정하고 속내를 드러내는 남성이 어필하는 시대라는 얘기다.

LG텔레콤 광고 '퇴근길 편'을 보자. 늘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던 샐러리맨이 어느 날 지하철 대신 버스를 탄다. 문득 노을이 보고 싶어서다. 차창으로 노을을 바라보며 우수에 잠긴 미소를 짓는 남자(上)를 통해 사람들은 일상의 작은 변화로 기분을 푸는 소시민의 정서를 공감한다. 금강기획의 김해욱 대리는 "남자는 반드시 이래야 한다는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 일상에 지쳐 때로 감상에 빠지고 싶은 남성들의 심리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9일께 전파를 타는 삼성생명 광고 '연말 편'은 연초계획 중 어느 하나 제대로 실행하지 못한 샐러리맨의 비애를 담는다. 인생의 무게를 상징하는 서류가방을 들고 크리스마스 캐럴에 흥청거리는 명동 인파 속에 파묻히는 샐러리맨의 뒷모습 위로 '금연.승진.건강 등 연초계획을 이루지 못해서인지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지만, 그래도 당신은 내게 큰 사람이고, 내년에도 더 사랑할 것'이란 아내의 위로가 겹쳐진다.

삼성생명 서성식 부장은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중년 남성의 모습에서 '저게 우리의 모습이다'라고 공감하는 시청자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광고의 '남편 편'에서 휴일 오후 소파에 누워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다 문득 뱃살을 의식하고 쑥스러운 웃음을 짓는 샐러리맨(中)도 중년남성의 감성을 섬세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진솔한 남성 심리가 광고에서 부각되는 것은 사회적으로 강요받아 왔던 남성성이란 구속에서 탈피하려는 일련의 움직임과 맥이 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광고대행사 웰콤의 권미경 부장은 "실생활에서 마초 스타일의 남자보다는 때로 울기도 하고 외로움도 타는 인간적인 남자가 인기를 끄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제일기획의 김홍탁 국장은 "그동안 광고에 비친 마초적인 남성의 모습은 사회적으로 강요된 모습일 수 있다"며 "남자의 외로움, 갈등 등의 심리를 표현하는 광고들이 나오는 것은 진실한 남성상을 요구하는 시대의 산물"이라고 분석했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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