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기대가 자못 크다

중앙일보

입력 2015.04.1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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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와인 애호가인 이혼남 마일스. 전 부인과 재결합을 바라며 최고의 와인이라는 1961년산 샤토 슈발 블랑을 애지중지 보관 중이다. ‘기대가 사뭇 크다’는 표정으로 “특별한 날 마시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그에게 마야란 여자는 멋진 조언을 남긴다. “반대로 그 와인을 따는 순간이 당신에게 특별한 날이 될지도 모르죠!” 영화 ‘사이드웨이’의 한 장면이다.

 두 부사의 의미를 혼동해 잘못 쓰는 일이 종종 있다. “기대가 사뭇 크다는 표정”과 같이 사용한 경우다. 이때는 ‘사뭇’보다 ‘생각보다 매우, 꽤, 퍽’이라는 뜻의 부사 ‘자못’이 오는 게 자연스럽다. 그의 표정에서 특별한 날 마시기 위해 아껴 둔 와인을 따는 순간에 대한 기대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게 드러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결혼 소식을 들은 남자는 사뭇 당황하는 기색을 비치더니 뛰쳐나갔다”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에 마시려던 와인을 패스트푸드점에서 종이컵에 부어 먹는 장면은 사뭇 충격적이다” 등도 마찬가지다. ‘사뭇’보다 ‘자못’이 어울린다.

 ‘사뭇’은 주로 “성격도 외모도 사뭇 다른 두 친구의 서글프면서도 유쾌한 여정을 담은 영화다”처럼 ‘아주 딴판으로’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이 밖에 “사람들 앞에서 사뭇 술을 마셔댔다”와 같이 거리낌 없이 마구, “주말에도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사뭇 바빴다”처럼 내내 끝까지, “군중에 둘러싸여 있던 그의 가슴속에 사뭇 슬픔이 밀려왔다”와 같이 마음에 사무치도록 매우 등의 의미가 있다.

 ‘도무지’와 ‘도저히’도 헷갈리기 쉬운 부사다. “이 요리는 도저히 맛이 이상해 먹기 힘들다” “그는 도저히 말이 없다”처럼 써서는 안 된다. ‘도저히’를 ‘도무지’로 고쳐야 한다. ‘도저히’는 “도저히 못 참겠다”와 같이 부정 표현과 어울려 ‘아무리 해도’의 뜻을 나타낸다. ‘도무지’는 ‘아무리 해도’란 의미 외에 ‘이러니저러니 할 것 없이 아주’라는 뜻으로도 사용한다. ‘도무지’가 전자의 의미일 경우 ‘도저히’와 바꿔 쓸 수 있지만 후자의 뜻일 때는 ‘도저히’로 바꿀 수 없다.

이은희 기자 e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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