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향토문화인(6) 강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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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강릉인들은 곧잘 강릉을 「서민문화의 왕도」라고 내세운다. 역사적으로 5대 생활권이라는 서울·평양·전주·경주·강릉중 강릉을 제외 한네곳은 모두 왕국의 도읍을 거친곳이나 오직 강릉만이 이를 빗겨나간 순수서민문화의 고장이라는뜻이다. 얼마전 고속도로가 뚫리긴 했으나 아직도 천혜의 자연조건으로 한국적 의식과 생활문화를 온존하고 있다는데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강릉인들은 또 이른바 영동문화권의 활성화에 기대감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강릉이 바로 이 지역의 문화중심지이기 때문이다.
강릉문화는 강릉문화원(원장 조기현)과 예총 강릉지부(지부장 최돈택) 사람들이 중심이 돼 이끌어가고 있다.
강릉문화원의 주된 관심은 강릉에 관한 모든 전통자료들을 소멸되기 전에 모으는 일이다.
어디를 가나 전통은 자랑하나 기록은 소홀히 하는게 보통인데 강릉인들은 이점을 안타까와한다. 모든 전통을 모아 활자화하자는뜻에서 이 지역(명주포함) 60세 이상의 노인 50여명을 모아「향토자료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들은 이 지역의 역사를 샅샅이 뒤지며 전해들은것, 본 것들을 쓰고 얘기해준다. 이들 자료들은 모두 기관지 『임영문화』에 싣는다. 임영은 예부터 전해내려 오는 강릉(명주포함)의 별호다. 현재 6집을 제작중이다.
지난 82년엔 강릉을 소개하는 『임영문화대관』을 펴냈는데 그 알찬 내용으로 정평이 나있다. 해마다 강릉 단오제를 주관하는것도 강릉문화원의 큰일중의 하나다.
무형문화재 제13호 이기도 한 단오제는 강릉이 자랑하는 유서 깊은 문화재다. 김선풍(관동대) 박영완(동) 신간식(동) 김기설(간호전문대) 이춘영(강원도문화재위원) 정의윤(동)씨 등과 관동대 영동민속연구소가 이방면의 연구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강릉문화원은 조원장과 이상혁 이사장, 10명의 이사, 그리고 조규돈 사무국장이 이끌어가고 있다.
다양한 참작활동은 예총 강릉지부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영동지방 유일의 예총지부로서 62년 5개 협회로 발족, 현재 7개 협회 3백50여명의 회원으로 성장했다.
창립20주년을 맞은 지난82년『예총강릉』을 창간, 현재 2집을 준비중이며 매년 1년간의 활동을 집대성하는 영동종합예술제도 열고있다.
문인협회(지부장 김정개) 산하조약돌 아동문학회와 해안문학회의 활동이 두드러지다.
동인지 『조약돌』 10짐까지 낸 아동문학회에선 권영상 김완성 김원기 남진원 김진광 엄기원 박영규 조무근 최도규 김종영씨 등과 원로 이동운(65)씨가, 『해안』2집을 낸 해안문학회에선 김유진 구영주 김원기 박화 안경원 엄창섭 이구재 조영수씨 등 지인과 김정개(희곡)박영규(아동문학) 박호영(평론)씨가 활약중이다. 매월 열리는 「바다시낭송회」는 신승근 이언빈 박기동 시인이 끌어가고 있다.
미술협회(지부장 유생오)는 강릉시와 자매결연 한 미국워털루시와 정기 작품 교류전을 계획하고 있는게 이채롭다.
산하 강릉서도회(회장 김좌기)등의 서예활동은 전통적으로 왕성하며, 원로서예가 김진백씨(71)의 활동도 돋보인다. 미협과 달리 20명의 젊은 작가들이 모인 화강회(회장 김영중)의 활약도 주목을 끈다.
사진협회(지부장 김진안)는 83년 싱가포르국제사진공모전에서 킹상을, 지난2월 영국국제사진전람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 기세를 올리고 있다. 오는 5윌중엔 영동지방 사진연합전을 계획하고 있다.
음악협회 (지부장 곽진용)는 시립관현악단 창단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으며, 그 외 국악협회(지부장 심대섭), 무용협회(박금자), 연극협회 (한정임)가 있다.
최동순 강릉지부 부지부장은 『늘어나는 업무량에 비해 조직력을 강화하기엔 역부족』이라면서 실질적인 지원책이 아쉽다고 말했다.
관광지를 끼고있는 곳에선 흔히 볼수 있는 현상이지만 강릉문화의 고민 역시 보존과 개발 사이에서 겪는 갈등이다. 강릉문화인들은 어떻게하면 보존을 전제로 품의있는 개발이 이뤄질수 있는가하는 문제에 깊은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강릉인들이 크게 푸념하는것은 아무래도 빈약하기 이를데 없는 문화시설이다. 도대체 변변한 전시장 하나 없다는것이다. 행정단위 중심이 아닌 문화단위 중심의 문화시설이 이뤄져야겠다는것. 이런점에서 강릉인들의 최대 염원은 「민속박물관」을 하나 세워보는 일이다.
이제 흩어지면 다시 찾을수 없을 서민문화의 유산들을 한군데에 담아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우선 1년이면 1백만명 이상 이곳을 거쳐가는 관광객들에게 동해안인들의 옛 생활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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