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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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 알의 겨자씨(sinapis)』는 성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보잘것 없는 작은 씨앗이 뿌리를 내려 큰 나무가 된다는 비유로 이 말을 썼다. 영어로는 「어 그레인 오브 머스터드 시드」(a grain of mustard seed)라는 숙어가 되었다.
겨자씨의 쌉싸롬한 맛은 벌써 2천년전부터 식탁의 조미료로 쓰였다. 고대 그리스의 의학자「히포크라테스」는 이것을 초약으로 썼다는 기록도 있다.
요즘 바로 그 「머스터드」의 이름이 붙은 화학무기가 이란-이라크전장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다고 지금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그 자리에서 살던 성서시대의 중동인들이 「한 알의 겨자씨」에서 하늘나라를 찾던 얘기와는 너무도 판이한 현실이다.
지금도 성서엔 『하늘나라는 마치 겨자씨와 같다』(마태복음13/31)는 구절이 남아 있다.
일명 「이페리트」(yperite)라고도 하는 「머스터드 가스」는 몸에 닿기만 해도 물집이 생기고, 살갗이 문드러진다. 「이페리트」라는 말 그대로다. 그 가스속에서 호흡한 사람은 폐에 심한 손상을 입는다.
외신 전송사진에서 보는 이란병사의 상처는 처참하기가 이를데 없다. 마치 끓는 물속에서 건져 놓은 사람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이 겨자탄은 이미 1차대전때 유럽전선에서 「악마의 가스」로 위력(?)을 보여 주었었다. 그 때 1백만명이상이 부상했고, 그 가운데 1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때의 처참한 광경에 놀란세계 40여개 국가들은 1925년 제네바의정서를 만들어 저마다 서명했었다. 그중엔 이란, 이라크도 포함되어 있다.
질식가스 또는 유독가스, 생화학무기는 어떤 경우에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약속이었다.
그러나 화학무기에 관한 시비는 오늘까지 그치지 않고 있다. 최근엔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할 때도 생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여러 방증들이 서방세계에 의해 제시된 일이 있다.
화학무기는 소리도 불길도 없는, 그러나 피해는 핵탄보다도 크다는 점에서 전쟁광들의 구미를 당기게 하고 있다. 게다가 생산비도 가령 수폭제조비의 1백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 이 문명시대에 지구 일각에서 아직도 이런 무기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은 인류의 정신문명이 오히려 거꾸로 뒷걸음치고 있다는 하나의 웅변이다. 그야말로 쌉싸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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