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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베트남계 호주 청년 끝내 처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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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일 싱가포르에서 사형에 처해진 베트남계 호주 청년 응우옌 뜨엉 반의 영정을 장의업체 관계자가 옮기고 있다. 응우옌은 마약 소지 혐의로 3년 전 싱가포르에서 체포됐다. 호주 정부 등은 구명운동을 벌였지만 끝내 사형 집행을 막지 못했다. [싱가포르 AP=연합뉴스]

싱가포르 정부는 2일 오전 6시(현지시간)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돼 사형을 선고받은 베트남계 호주 청년 응우옌 뜨엉 반(25)에 대한 교수형을 집행했다. 선원이던 응우옌은 2002년 캄보디아에서 고향인 호주의 멜버른으로 가던 도중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들렀다가 400g의 헤로인을 소지한 혐의로 체포돼 사형을 선고받았었다.

싱가포르는 1975년 제정한 마약처벌 관련법에서 15g 이상의 마약을 소지할 경우 사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했고, 마약사범에 대해서는 판사가 재량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했다.

사형 집행 소식을 전해들은 알렉산더 다우너 호주 외무장관은 "그의 범죄가 중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사형은 옳은 방법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필립 루덕 법무장관도 "어떻게 정상참작도 없이 사형을 집행할 수 있느냐"며 "사형은 가장 야만적이고 불행한 일"이라고 비난했다. 응우옌의 변호인들은 초범인 데다 쌍둥이 형의 사업 빚을 갚기 위해 잘못된 일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정상참작의 여지가 충분하다고 주장해 왔다.

사형이 집행되자 멜버른의 성 이그나티우스 성당은 그의 나이를 상징, 25번의 타종으로 죽음을 애도했다. 싱가포르의 반(反)사형위원회 등 인권단체들은 사형이 집행되는 창이형무소 앞에서 철야를 하며 촛불시위를 벌였으며 경찰은 유사시에 대비해 병력을 늘리기도 했다.

국제사면위원회(AI)의 사형반대운동 책임자인 팀 구드윈은 이번 처형은 야만적이라고 말하고 "사형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싱가포르 정부 관계자는 "응우옌이 소지하고 있던 헤로인은 2만6000번을 사용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이라며 "작은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에서는 이처럼 강력한 규정이 없으면 질서가 유지될 수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형이 집행되기 이틀 전 호주의 한 여론조사 기관이 실시한 응우옌의 사형 집행에 대한 찬반 조사에서 응답자의 47%가 찬성한 반면 46%가 반대해 찬반 양론이 팽팽히 맞섰다.

하워드 총리는 "싱가포르 정부가 마지막으로 자식을 안아보려는 응우옌의 어머니의 소원을 거절하고 손만 붙잡게 했다"며 아쉬워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사형수에게 가족 면회를 금지한 관례를 깨고 사형이 집행되기 전날 어머니, 쌍둥이 형, 그리고 친구와의 면회를 허용했다. 응우옌의 유해는 3일 저녁 호주로 이송돼 고향에 안장된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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