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AO결의와 소련의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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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소련의 KAL기격추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한 7일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이사회는 두 가지 점에서 의미 있는 국제회의였다.
첫째는 이 사건에 대한 전적인 책임은 소련에 있다는 결의안 내용을 확정한 점이고 또 하나는 이같은 서방측 결의안이 통과되자 소련은 그들이 제출했던 반대내용의 결의안을 철회했다는 점이다.
이번에 채택된 결의안은 작년12월12일 1백10차 이사회에서 채택된 진상조사보고서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서 다음번 총회에 회부될 ICAO의 최종 결론인 것이다.
이번 결의안은 KAL기가 고의로 항로를 이탈했다는 소련의 주장을 부인했고, 소련의 무력사용에 의한 민항기격추는 국제법 위반으로서 법적인 책임이 수반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로써 소련측이 주장해온 피격KAL기의 첩보행위설은 사실무근임이 국제적으로 공식 확정됐고, 아울러 소련에는 국제법 위반행위에 대한 응분의 조처를 취해야할 법률적·도덕적 책임이 지워졌다.
ICAO가 민항기 사고에 관한문제를 가장 공정·정확하게 다룰 수 있는 능력과 권위를 가진 유일한 국제기구이고, 책임당사국인 소련은 이 기구의 33개 이사국의 하나로서 회의에 계속 참석해 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한다.
이 같은 유권적인 국제기구의 유권적 결론에 소련이 승복치 않는다면 그것은 소련의 대표적인 공권력인 소련공산당 정권 자체가 무고한 민간인 2백69명을 학살한 만행의 공동정범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소련이 사건발생 이후 책임을 은폐하고 격추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억지를 부려온 사실을 똑똑히 보아왔다. 그들은 심지어 구조·조사작업마저 방해함으로써 또 다른 인도주외적 범죄를 범하고 말았다.
지금 소련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의 대국이며 미국과 함께 세계를 영도해 나가는 국제사회의 책임지도국가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KAL기사건의 발생, 수습과정에서 보여준 소련의 행위는 비인도적·비신사적이며 무책임한 것이었다.
이제 소련이 할일은 ICAO결의를 존중하고 우선 비무장·무저항의 민간항공기를 무력으로, 격추시킨 행위에 대해 그 책임을 시인, 사과하고 관계자를 문책하는 일이다.
그리고 피해자와 항공사에 대해 국제관례에 따른 적절한 보상조치를 즉각 취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이 같은 사건의 재발방지를 약속하여 민항기의 안전보장에 스스로 앞장서야 한다.
이 같은 국제적인 책임을 기피한다면 소련은 국제사회에서 그 도덕성과 합법성을 의심받게 될 것이다.
KAL기 피격의 14개 피해당사국들도 곧 워싱턴에서 모임을 갖고 이번 결의안 실행을 위한 공동노력을 전개하리라 한다.
관계국둘은 이런 일련의 행위가 민항기 보호를 위한 국제법정신을 성문화·관례화한다는 사실도 명심하여 소련의 책임과 배상이행을 철저히 받아내도록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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