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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세월호'와 '리바이어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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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양선희
논설위원

러시아 영화 ‘리바이어던’을 보았다. 제목을 들었을 때 반사적으로 ‘리바이어던=국가’라고 떠오른 건 주입식 암기교육 덕분이었다. 17세기 정치사상가 토머스 홉스의 저작 『리바이어던』이 머릿속에서 자동재생된 것이다.

 종교적 언어로 버무려 정치체제를 논한 이 저작에 따르면 리바이어던은 지상의 인간들을 전쟁 같은 고통과 죽음에서 보호하고 질서 있게 살도록 하느님이 불러낸 유한한 신으로 국가 또는 정부를 이른다. 인간은 본성이 교만해 스스로 질서를 잡을 수 없기 때문에 국가권력이 그들을 압도하고 평화를 강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데 원래 리바이어던은 성서에 나오는 ‘바다괴물’이다. 때론 고래 형상을 한다는.

 이 영화의 홍보 카피는 ‘권력이란 괴물에 맞서는 평범한 아버지의 치열한 생존 싸움…’이다. 하지만 실제 영화에서 주인공은 치열하지 않았다. 무기력하고 무능했다. 자신의 집이 시에 수용당할 위기에서 그가 한 일은 변호사에게 소송을 맡긴 게 전부였다. 소송에서 지고 난 뒤엔 분노를 참지 못해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거나 술을 퍼마시며 현실을 회피한다. 변호사가 자신의 아내와 불륜을 저질러도, 아내가 자살한 뒤에도 술만 마신다. 그리고 아내의 살인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면서도 울기만 한다.

 이 영화의 포스터엔 ‘바닷가에 버려진 거대한 고래뼈 앞에서 흐느끼는 소년’의 모습이 담겨 있다. 뼈다귀 앞에서 울어본들 누가 파도를 막아주겠는가. 무기력·무능·회피야말로 홉스의 ‘보호하는 국가 리바이어던’을 앙상한 뼈다귀로 만들고, 국가 권력을 파괴적 ‘바다괴물’로 변질토록 할 수 있다. 영화에서 내가 얻은 메시지는 이거였다.

 영화의 후유증인 듯하다. ‘리바이어던’과 ‘세월호’가 계속 오버랩되는 것은. 1년이 다 돼가도록 갈등과 분노가 진정되기는커녕 날로 커지는 세월호 사고. 200여 명의 아이를 수몰시킨 전대미문의 사고 현장에서 가장 기막혔던 것은 아이들을 구조해내지 못한 무능한 정부였다. 그 후 속속 드러났던 정황들. 해상관제센터 직원들은 제대로 근무하지 않았고, 이를 숨기려고 거짓 장부를 작성했고, 낡고 위험한 배는 제재 없이 아이들을 싣고 바다로 나갔고, 그 뒤에는 관피아라는 적폐가 있었고….

 그리고 끝내 바다가 아이들을 집어삼키는데도 무능한 정부는 멀뚱거리기만 했다. 개인의 무능은 혼자의 비극으로 끝나지만 무능한 정부는 얼마나 참담한 것인지 우리는 보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눈물로 약속했었다. 세월호 사고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질 것이라고.

 한데 아직도 세월호 가족들은 길거리를 전전하고 일부는 ‘진상 규명’과 ‘선체 인양’을 요구하며 삭발을 했다.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출범도 못했고, 일부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 10명 중 6~7명은 선체 인양을 요구했다. 결국 대통령이 선체 인양 적극 검토를 지시했다. 이에 일각에선 ‘선체를 인양하고 이젠 그만 갈등을 끝내자’고 주문한다.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한데 선체만 인양하면 이 갈등은 해소될까. 정부는 그동안 세월호 진상 조사를 벌였다. 그런데도 계속 진상 규명을 요구받는다. 이 대목에서 ‘진상 규명’ ‘선체 인양’이 갈등의 진정한 뿌리가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어쩌면 진짜 문제는 ‘진상 규명’이 아니라 정부에 대한 불신과 해소되지 않는 불안감일 수 있다. 세월호 사고는 포악한 정부뿐 아니라 무능한 정부 역시 괴물이라는 것을 일깨워줬다. 국민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알게 됐는데, 정부는 여전히 말로만 달라지겠다고 할 뿐이다. 달라지지 않는 정부에 대한 불안감이 합의를 겉돌게 하고 갈등을 증폭시키는 진정한 이유일 수 있다는 말이다.

 홉스는 국가권력이 반드시 갖춰야 할 두 가지 요건은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힘’과 ‘국민의 동의’라고 했다. 17세기 사람도 갈파했던 이 단순명료한 원리를 이 시대에 다시 외쳐야 하는 건 슬픈 일이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