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강간 피해자는 무조건 여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풍문으로 들었다, 멀리 바다 건너 미국. 한국인 교수와 학생이 많기로 유명한 모 대학에서 D학점에 불만을 가진 한 여학생이 한국인인 담당 교수 연구실로 찾아가 학점을 올려달라고 사정했던 모양이다. 출석도 안 하고 보고서도 안 낸 이유를 들며 학점 변경을 거부하는 교수 앞에서 그녀는 자기 손으로 티셔츠를 거칠게 잡아 찢고는 울면서 뛰쳐나가 곧바로 ‘교수가 강간하려 했다’고 신고했단다.

 깐깐하고 원칙주의자였던 그를 잘 아는 주위 사람들은 교수 말을 믿어줬고 여학생에게 억울한 일을 당한 남자 교수를 안타까워했다는데. 그가 학교로부터 어떤 징계를 받았는지는 모른다. 그 사건 이후 그 학교 교수들은 학생과 면담할 때면 반드시 연구실 문을 열어놓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평소에 잘 아는 한 아주머니의 대학생 아들이 토익학원에서 한 여자를 만나 잠시 연애하다 헤어진 지 일주일이 지난 날 그녀로부터 강간범으로 고소를 당했다고 한다. 만날 때부터 작정하고 덤볐는지 그녀는 성관계 증거물까지 경찰에 제시했다는데. 아들은 합의하에 이뤄진 행위라고 말은 하지만 속이 까맣게 타들어간다는 그 아주머니는 이제는 성행위 전 동의서까지 받아둬야 되는 세상이 됐나 보다 하며 속상해 했다.

 40대 여성이 50대 남자친구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강간을 시도하다 강간 미수죄로 구속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여성의 강간죄를 인정한 첫 사례라고 한다. 강간이란 폭력이나 협박 따위의 불법적인 수단으로 행하는 성행위를 말한다. 힘이 중요한 변수이기에 그동안은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여자가 희생물이었지만 이 사건을 통해 강간의 객체가 남자도 될 수 있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강간죄는 부부 사이에도 성립된다. 부부와 강간, 그리 썩 어울리는 말은 아니지만 서로 성적 자기결정권은 존중해 줘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거라던데. 2년 전 ‘부부 사이에도 강간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처음 나온 이후 이제까지는 흉기로 위협하는 경우에만 인정돼 왔었다. 그런데 지난 1월, 흉기 없이도 상대에게 치욕감을 주며 행한 성행위까지 부부 강간죄로 폭넓게 인정된 판결이 있었다. 남편이든 아내든 배우자 동의 없이 치욕감을 느낄 만큼 강제로 성행위를 했다면 부부 강간죄 적용이 된다는 거다. 부인에게 강간당한 남편 얘기도 머지않아 나올 것 같다.

 성이 개입된 사건에서 여자는 무조건 피해자라는 생각, 그건 편견이었다. 피해자 가해자, 여자 남자 따로 없더라.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 [분수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