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타라이 사장 '虎視牛行' 캐논 성공신화 만들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5면

1966년 말 캐논의 미국 현지법인에 미 국세청(IRS) 직원들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소폭의 흑자를 냈다고 세무당국에 낸 당기 실적 보고서가 문제가 됐다. IRS는 캐논 현지법인이 매출을 고의로 누락해 흑자 규모를 줄이지 않았나 의심했다.

조사 결과 캐논의 '회계 조작'이 드러났지만 IRS의 예상과는 딴판이었다. 흑자를 줄인 게 아니라 실제론 적자를 냈으면서 광고비 등 경비를 장부에 늦게 기입하는 수법으로 흑자로 위장했던 것이다.

당시 국세청 조사를 당한 캐논 미국법인의 회계 책임자가 미타라이 후지오(御手洗 富士夫.사진) 현 캐논 사장이다. IRS 직원은 조사를 마치면서 당시 30세의 미타라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적자를 내고 있는) 미국 사업은 이제 그만 접고 떠나라. 그리고 그 돈을 은행에 넣어라. 그러면 최소 연 5%의 이자는 받을 수 있을테니까."

미타라이 사장은 그 때의 수모를 평생 교훈으로 간직하고 있다. 은행 이자보다 수익률이 낮은 사업은 하지 않는다는 게 95년 캐논 사장에 취임한 미타라이의 글로벌 경영 원칙이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일본 경제의 장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캐논이 높은 성장세를 구가할 수 있는 것은 미타라이 사장의 우직한(slow and steady) 경영 덕분이라고 24~25일자에서 보도했다.

필요하면 호랑이처럼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면서, 소처럼 진득하게 수익성을 좇는 보수적인 경영이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미타라이판(版) '호시우행(虎視牛行)' 경영인 셈이다.

캐논은 지난해 1천9백억엔의 순익을 올려 3년 연속으로 흑자 신기록을 내는 기염을 토했다. 미타라이가 취임하던 95년 7.2%에 불과했던 캐논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11.8%로 뛰어올랐다.

캐논 창업주의 조카인 미타라이 사장은 미국식 경영과 일본식 경영의 장점을 접목시킨 하이브리드 경영으로 유명하다. 그는 회사 전체가 운명공동체 의식으로 단결해 있는 것이 캐논이 갖고 있는 경쟁력의 원천이라며 종신고용제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연공서열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학력.연령.성별에 관계없이 실력에 따른 인사.보상 제도를 정착시켰다.

또 미타라이 사장은 취임 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채산이 맞지 않는 사업부문을 과감하게 정리했다. 98년에 PC 생산 부문을 정리하고 2001년에는 PC의 국내 판매를 중단하는 등 불과 5~6년 만에 무려 7개의 돈 안되는 사업부문을 접었다.

사람 중시의 경영도 돋보인다. 미타라이는 한번 결정하면 조직 하부조직까지 이를 적극 전파하는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의사 결정을 신속하게 추진하면서도 조직 상하간의 의사소통을 중시한다. 1년에 한번은 해외공장을 포함한 모든 사업장을 직접 방문해 현장 분위기를 파악하는데 전력을 다한다.

삼성경제연구소 김현진 수석연구원은 "미타라이 사장이 보너스를 지급할 때는 8백여명이 넘는 전체 임원에게 손수 돈 봉투를 건네주며 격려와 당부의 인사를 한다"며 미타라이 사장의 인간미 넘치는 경영을 높이 평가했다.

서경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