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한 문재인, 박지원에게 SOS … 100분 만찬 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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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4·29 재·보선을 앞두고 동교동계의 ‘선거 지원 거부’로 촉발된 새정치민주연합 내 분열 상황이 5일 밤을 고비로 일단 봉합 국면에 접어들었다.

문재인 대표가 지난 2·8 전당대회에서 맞붙었던 박지원 의원과 함께 만찬회동을 하면서다. 100분간의 단독 회동 뒤 양쪽 모두 긍정적인 내용의 소감을 내놓았다. 김영록 수석 대변인은 문 대표의 지시를 받아 “두 분이 상호 긴밀한 의견을 나눴고, 이야기가 잘됐다”고 브리핑했다. 김 대변인은 “문 대표는 ‘박 전 대표에게 4·29 재·보선에 대해 간곡히 도움을 청했고 그간의 오해도 다 풀었다’고 밝혔고 박 의원은 ‘권노갑 고문을 비롯해 동교동 분들과 잘 의논해 돕도록 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박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 대표는 여러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설명하고 간곡한 협력을 요청했고 저는 ‘동교동계는 호남 민심을 대변한다’며 심각성을 설명했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곤 “오늘 논의된 사항에 대해선 권노갑 고문 등 몇 분과 협의해 국민을 보고 명분 있는 선당후사의 자세로 정리해 연락하겠다고 (문 대표에게) 말했다”고 덧붙였다.

 박 의원 스스로가 “명분 있는 선당후사” “간곡한 협력을 문 대표가 요청”이라고 표현한 만큼 6일 이후 그와 동교동계는 잠궈뒀던 빗장을 풀고 선거 지원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박 의원과 동교동계 내부의 조율 절차가 남긴 했지만 그동안 “입장을 선회할 수 있도록 명분이나 모양새를 먼저 만들어라”는 요구에 문 대표가 성의 표시를 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지난달 31일 동교동계 인사 50여 명이 김대중(DJ) 전 대통령 묘역 앞에서 거수 투표를 통해 ‘권 고문의 선거 지원 불가’ 의견을 모으면서 촉발된 갈등은 닷새 만에 일단 수면 밑으로 잦아드는 모양새다.

 동교동계가 선거전에 본격 가세한다면 서울 관악을과 광주 서을 지역의 재·보선 판세에 어떤 영향을 줄지가 관심이다. 지난 3일 공개된 본지 여론조사에서 이들 지역의 새정치연합 후보들은 새누리당 후보(오신환)와 무소속 후보(천정배)에게 뒤졌다. 당내 일각에선 “동교동계의 선거 지원 문제 외에 두 사람 간에 모종의 정치적 딜이 있을 수 있다”는 추측도 나왔지만 양측 모두 이런 가능성을 부인했다.

 이날 박 의원과의 회동이 ‘해피 엔딩’의 모양새로 끝나기 전까지 새정치연합과 문 대표 주변의 분위기는 하루 종일 무거웠다. 오전 9시로 예정됐던 동교동계 맏형 권노갑 고문과 문 대표의 회동이 무산됐기 때문이었다. 문 대표가 ‘상임고문과 최고위원 간담회’라는 형식으로 권 고문을 만나 협조를 구하고 권 고문이 이에 화답해 ‘선거 협조’ 의사를 흔쾌히 밝히는 자리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예정시간 38분 전 당 공보실이 기자들에게 ‘간담회 취소’란 문자를 보냈다. 권 고문 측이 “상임고문들의 참석률이 너무 저조하니 미루자”고 통보해 왔기 때문이지만 당내에선 ‘동교동계 내부의 교통정리가 덜 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돌았다.

 양측의 갈등 해소엔 이희호 여사가 지난 3일 권 고문과 이훈평 전 의원 등을 불러 “선당후사”를 강조한 것도 한몫을 했다고 한다. 이후 서울 용산의 한 호텔에서 이뤄진 동교동계 핵심 인사 8명의 회동에서도 처음엔 “선거 지원은 친노에게 또 이용당하는 것”이란 부정적 기류가 강했지만 결국 “당을 깰 수는 없지 않나. 결국은 도울 수밖에 없다”는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는 것이다.

 어렵게 봉합된 양측의 힘겨루기에 대해선 “동교동계의 ‘몽니’와 문 대표의 정치적 미숙함이 재·보선을 앞두고 당을 적전분열(敵前分裂) 양상으로 몰아갔다”는 비판이 당내에서 나왔다. 그동안 문 대표의 입장을 두둔해 온 한 중진 의원조차 “문 대표가 당 대표급 인사들로 구성된 비공식 기구인 ‘원탁회의’를 만들어 여기에 참여하지 못하는 당 원로들이나 상임위원들에게 소외감을 갖게 하는 등 실수를 많이 했다”고 지적했다. ‘도울 명분을 내놓아야 한다’는 동교동계의 집단행동에 대해선 “권 고문 등 동교동계 핵심 인사들의 뜻과 달리 일부 전직 의원들이 판을 흔들려 한다”(친노무현계 핵심 인사)는 비판도 나온다.

서승욱·정종문 기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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