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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광장] 自治의 힘은 ‘더불어’ 시민의식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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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호 30면

꽃집 작은 화분에는 수선화가 노랗고, 마을길 담장 너머에는 철쭉이 울긋불긋하다. 남도에 봄이 왔다. 구례 산동에는 산수유가 노랗고 광양에는 매화가 붉고 하얗다. 꽃들이 잔치를 열었다. 꽃들은 기지개를 펴고 사람들은 봄나들이에 나선다. 꽃구경을 나선 사람들은 “지방으로 간다”고 말하지 않는다. 지방이란 말은 임금이 있던 시절, 권력의 중심부를 ‘중앙’, 권력을 벗어난 곳을 ‘지방’, 적과 대치하는 ‘변방’으로 나누어 부르던 말이다. 시민에게 권력이 있는 지금에는 맞지 않는 말이다.

새해가 오면 올해 해야 할 일을 세우고, 봄이 오면 집안을 깨끗이 청소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아침에는 오늘 할 일을 살피고, 이웃과 부대끼면서 우리가 할 일을 찾는다. 강제로 하는 일도 아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일을 마친 뒤에는 보람을 느낀다. 스스로 할 일을 세우고, 스스로 빈 칸을 채운다. 우리는 이를 ‘자치’라고 부른다. 무엇을 할지 알고 있고, 어떻게 할지 알고 있는 시민들은 모두 제 몫을 해낸다.

지역(지방)자치는 시민의 관심과 자발적 참여에 그 깊은 뜻이 있다. 지금 우리 마을에는 무엇이 필요하고, 우리 지역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누구보다도 시민들은 잘 안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 무엇이 우선이고, 시민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잘 깨닫고 있다. 지역자치는 책상에서 억지로 꾸며내고, 겉만 화려하게 가꾸는 일이 아니다. 시민들의 슬기로운 생각이 모이고, 가장 알맞은 실천방안을 찾아내는 일이 지역자치다. 그렇게 실천된 정책은 시민들이 골고루 혜택을 받는다.

옛날부터 우리나라는 마을에 혼례 잔치가 있거나 초상을 치를 때면 이웃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어울려 음식을 차리며 기뻐했고, 힘을 보태며 함께 슬퍼했다. 그래서 ‘이웃사촌’이라 불렀고 ‘더불어(대동) 세상’을 만들었다. 조상들의 슬기이며 지켜가야 할 전통이다. 시대가 바뀌니 형태가 바뀌기는 했으나 아직 우리 마음과 몸에는 ‘더불어’가 배어 있다. 버릴 수 없고 버려서도 안 되는, 오히려 가꾸어야 할 시대의 아젠다’다.

밥상머리는 식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고, 마루는 옆집과 오순도순 서로를 이해하는 곳이었다. 마당은 이웃과 함께 일을 하는 일터이자 지혜로운 정보를 주고받는 포털 사이트였다. 동네 어귀의 널찍한 당산나무 아래는 마을일을 의논하여 미래를 결정하는 광장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밥상과 마루에서 ‘소통’을 했고, 마당과 당산나무 아래에서 ‘협력과 상생’을 했다.

전라도와 충청도, 경상도와 강원도는 행정구역일 뿐이지 마음과 몸까지 나누는 경계선이 아니다. 남한과 북한도 그렇고,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어디에서든 서로 돕고 서로 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일이 먼저다. 그것이 평화이고, 그 가운데 사람이 있다. 즐겁게 서로 소통하고, 힘을 모아 서로 돕고, 보람을 느끼며 더불어 잘 살아야 한다. 그것이 사람의 삶이다.

벽에 문을 달면 소통이 되고, 있는 문이라도 닫아버리면 불통이 되고 만다. 변화와 혁신은 말로만 외쳐서 되는 게 아니다. 벽으로 막혔던 달구벌의 대구와 빛고을의 광주가 문을 달아 교류를 하고, 광주광역시청의 문을 활짝 열어 시민과 소통하는 변화를 시작했다. KTX 호남선이 개통되어 남녘 꽃구경도 한나절이면 가능해졌고,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문화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의 교류가 활발해지게 되었다. 오는 7월 호남지역에서 최초로 개최하는 대규모 국제행사인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는 세계 젊은이들이 광주에 모여 이해와 우정을 쌓는 축제의 장이 될 것이다. 이 모든 일이 가능한 것은 스스로 힘을 내는 시민들과 서로 도우려는 국민들의 힘 덕택일 것이다.

다툼은 대화로 풀어내고 경쟁은 발전으로 끌어가는 슬기로움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잇속을 챙기려고 억지를 부리거나 이기려고 상대를 짓밟는 시대는 지났다. 그리해서는 지금의 우리 모두가 무너진다. 맡은 일에 책임을 지고, 시민 앞에 떳떳해야 한다. 더는 핑계로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 되고, 더는 몰래 숨어서 살짝 넘기면 안 된다. 그리하면 미래의 우리가 모두 무너진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그리고 우리 지역의 미래는 우리가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서로 도우며 꾸려가야 한다. 열린 마음으로!



윤장현 1949년 광주 출생. 조선대 의대를 나와 안과 의사로 일했다. 한국 YMCA 전국연맹 이사장과 아름다운 가게 전국 대표, 아시아인권위원회 이사로 활동했으며 2014년 7월 광주광역시장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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