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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붙이도 아닌데 … 월간 '사진예술' 아름다운 대물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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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사진 월간지 ‘사진예술’을 26년에 걸쳐 키워온 세 발행인. 왼쪽부터 2대 김녕만, 1대 이명동, 3대 이기명씨. 세 사람은 ‘사진예술’ 4월호 제목처럼 ‘오래된 것은 새롭다’를 행동으로 보여줬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세 사람이 나란히 서자 뜨거운 박수가 터졌다. 원로사진가 이명동(96), 보도사진가 김녕만(66), 사진전 기획자 이기명(50)씨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남이지만 한국사진역사에 희귀한 매듭 하나를 엮었다. 1989년 5월 창간된 사진전문 월간지 ‘사진예술’을 26년 동안 지켜온 1대, 2대, 3대 발행인이다. 2일 오전 11시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사진예술 발행인 이임·취임식’에 모인 문화계 인사 200여 명은 콧날이 시큰해지는 감동으로 강직한 대물림을 지켜보았다.

 초대 편집인으로 2001년까지 일한 이명동 선생은 격려사에서 잡지 제호에 얽힌 뒷얘기를 털어놓았다. “화가와 문인 친구들이 사진도 예술이냐며 잡지 이름이 유치하다고 놀렸지만 지금 생각해도 ‘사진예술’이라 붙이길 잘했다”고 자평했다. 중앙대 사진학과 스승이자 동아일보 사진부 선배인 이 선생을 이어 2001년부터 최근까지 제2대 편집인을 지낸 김녕만씨는 “물려주신 분, 물려받으신 분 모두 귀한 인연이라 나는 참 복 많은 사람”이라고 자랑했다. 지인들이 그만두지 말라고 말리며 ‘왜?’ 하다가 후임인 이기명씨 이름을 듣고는 ‘아~’ 하기에 역시 잘 떠났구나 안도했다는 것이다.

 신임 발행인인 이기명씨는 “두 분 다 사진을 전공한 자제가 있음에도 사심 없이 후배에게 가업 같은 잡지를 물려줬다”며 존경심을 표했다. 이 신임 발행인은 “두 분의 뜻을 받들어 지역 간 편차 줄이는 전국 잡지, 한국과 세계 사진문화 상호교류에 앞장서는 잡지, 사진계의 건전한 비판과 소통에 힘쓰는 잡지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지금은 사진가로 더 이름난 윤주영(87) 전 문화공보부 장관은 “결호 한 번 없이 26년 줄기차게 전문잡지를 내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라고 축사했다. 특히 빚 안 지고 경영 상태가 좋을 때 잡지사를 넘긴 이명동, 김녕만 두 발행인의 뜻을 높이 평가했다.

 축하공연에 나선 소리꾼 장사익씨는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꽃이 그득 핀 장관을 보니 저절로 봄꽃 노래가 터져나온다”고 덕담했다. 장씨는 “남편인 김녕만 발행인에 앞서 편집장으로 ‘사진예술’을 20여 년 이끌어온 아내 윤세영씨의 고운 마음에 바친다”며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불렀다.

글=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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