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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언니 저 맘에 안 들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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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고백하건대 가끔 맘에 들지 않는 여자 후배가 있다. 인사를 안 해서 등 사소한 태도 문제일 수도 있고, 후배인데 일을 너무 잘해 샘이 나서이기도 하고, 그냥 어리고 예뻐서일 때도 있다. 티는 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으나 언젠가 한 후배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선배, 저 별로 안 좋아하시죠?” 순간, 속으로는 ‘알면서 왜 묻니?’ 했지만 식은땀을 흘리며 “왜 그런 소릴 해. 호호”로 무마. 서로에 대한 불만을 팩트 그대로는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오가는 말의 ‘뉘앙스’에 진짜 마음이 있다. 여자들의 커뮤니케이션은, 가끔 좀 이렇게 복잡하다.

 여자 연예인 두 명이 촬영장에서 부딪친 사건, 그 핵심에도 이런 알 듯 말 듯한 문장이 있다. 추운 바다에서 해녀 체험을 하고 나온 선배 연예인에게 후배가 말을 건다. “추워요?” “너무 추워. 너 한번 갔다 와 봐.” 후배가 “안 돼”라고 짧게 답하자 선배의 말이 거칠어진다. “넌 싫어? 남이 하는 건 괜찮고 보는 건 좋아?” “아니 아니.” “지금 너 어디서 반말하니?” 그리고 문제의 문장이 나온다. “언니 저 맘에 안 들죠?” 이 말을 계기로 선배의 욕설이 시작된다.

 문제의 대사가 담긴 동영상이 공개되니, 여자들은 ‘후배도 잘못했네’ 하는 반응이다. 반면 남자들은 ‘그게 뭐 어쨌다고’ 한다. 흔히 여자들은 직설화법보다 간접화법을 선호한다고 하는데, 예를 들면 남자친구가 맘에 들지 않는 선물을 줬을 때 “별로야”라 하지 않고 “영수증 어딨어?” 하는 식. “언니 저 맘에 안 들죠”라는 말에도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한 네티즌의 풀이는 이렇다. “난 너보다 나이도 어리고 잘나가. 그러니 바다에 들어가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거고. 기분 나쁘지?” 진짜 이런 마음으로 한 말인지 타인이 어찌 알겠나. 문제는 여러 여자들에게 그렇게 ‘이해된다는’ 사실이다.

 다툼의 내용이 어쨌건 간에 이번 사건에 쏟아지는 관심은 그야말로 지나쳐 보인다. 대화의 진짜 내용도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한 사람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가해자로 몰아넣어 기어코 모든 일을 그만두도록 만들었다. 욕설을 한 건 나쁘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 때로 일어날 수 있는 다툼 아닌가. 상처를 주고받은 두 사람이 서로 사과하고 화해하면 그만이다. 사소한 사건이 과도하게 화제가 되고, 순식간에 선악을 가려 단죄해 버리는 상황을 볼 때마다 오싹하기 그지없다. 그러고 보면 둘 사이의 대화를 또 이렇게 시시콜콜 해석하는 이 글도 좀 ‘오버’인지 모르겠으나.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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