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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진 기자의 아웃사이더] 천재의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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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천재는 선척적일까, 후천적일까. 교육 기자로서 다양한 인물을 취재하다보면 이런 고민을 자주 하게 됩니다. 한 번은 천재소년으로 알려진 송유근(18) 군과 그의 아버지를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송군은 초·중·고로 이어지는 정규 교육과정을 뛰어 넘어 10대 초반에 한 대학원에 입학해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천재 소년입니다. 아직 과학계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연구를 발표한 적은 없지만 송군의 성장과정은 천재라는 표현 외엔 딱히 적당한 설명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남들은 덧셈·뺄셈을 배울 때 물리학 분야에서 어렵기로 소문난 양자역학 책을 읽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송군의 부모가 어떤 특별한 교육을 했던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특별한 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굳이 꼽자면 송군의 천재성을 일찍 알아챈 것 정도랄까요. 취재 과정에서 들었던 한 가지 일화가 떠올라 소개합니다. 송군의 부모는 송군이 어릴 때 아이가 자폐증은 아닐까 하고 의심했었다고 합니다. 한 번은 송군이 더운 여름에 땡볕 밑에 앉아 무언가를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답니다. 4~5시간 쯤 꼼짝도 하지 않고 말입니다. 뭔가 하고 살펴보니 지나가는 개미행렬을 보고 있었다는 군요. 잠시도 앉아 있지 못하고 천방지축 뛰어 다닐 나이에 4시간 넘게 꼼짝도 하지 않고 개미행렬을 관찰하는 아이…누구라도 아이가 이상한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할 상황이죠. 하지만 송군의 부모는 그런 아이를 탓하거나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행동을 교정하려고 억지를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관찰하고 고민하도록 그냥 두었다고 합니다.

당시 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면서 송군의 천재성은 어쩌면 ‘마음껏 사색하고 상상하는 힘’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최근 과학NIE에서 아인슈타인이 정립한 상대성 이론(중앙일보 열려라공부 섹션 3월 18일자)을 정리하면서 같은 고민을 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1900년 스위스 공과대학을 졸업했는데, 대학 조교 자리도 얻지 못할 정도로 그의 천재성에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1902년 지인의 도움으로 스위스 특허청에서 특허 심사관으로 일하게 됩니다. 그는 복잡한 문제 속에서 핵심을 짚어내는 데 놀라운 재능을 발휘했는데, 특허청 업무를 빨리 끝내고 남는 시간은 물리학 연구에 시간을 쏟았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사고실험이라는 독특한 사색을 자주했다고 합니다. 사고실험이란 실제 실험 장치를 쓰지 않고 머리 속에서 단순한 조건을 가정한 뒤 이론적 가능성에 따라 결과를 유도하는 논리적 사고방법을 말합니다. 당시로선 물리학 연구에서 일반화돼지 않았던 방법입니다. 지금은 실험이 힘든 초미시 세계를 다루는 양자역학에서 물리학자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실험방법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몇 년 동안 일상적으론 체험하기 힘든 빛의 세계를 하루 종일 그려보고 상상했습니다. 그가 정립한 상대성이론에서 중요한 가정 중 하나가 빛의 속도는 항상 일정하다는 광속불변의 법칙입니다. 그는 빛에 올라타 다른 빛을 쫓는 꿈을 꾸다 이와 관련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이런 경험은 천재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아인슈타인과 같은 경험을 자주 겪습니다. 누구나 며칠동안 끙끙대던 문제의 해결책이 갑자기 떠오르는 경험을 해봤을 겁니다. 도저히 해결될 것 같지 않은 문제가 의외로 쉽게 해결됐던 경험 말입니다. 이는 뇌의 작동원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뇌는 우리가 잠을 자는 순간에도 계속 고민하고 작동합니다. 우리가 깨어 있는 동안 했던 고민을 잠든 사이 뇌는 그 고민을 계속 이어간다는 겁니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죠.

결국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정립할 수 있었던 것은 몇 년동안 끈질기게 매달려 상상하고 고민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죽자 부검을 맡았던 병리학자는 아인슈타인의 뇌를 분석해봤습니다. 뇌의 구조 자체가 일반인과 다르지 않을까라고 기대했지만, 아인슈타인의 뇌는 일반인의 평균 뇌 용적보다 조금 작은 편이었다고 합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류 역사에 커다란 흔적을 남긴 코페르니쿠스·루소·렘브란트 같은 천재 상당 수의 지능지수(IQ)가 일반인 평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천재성이 뇌 자체의 다름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는 거죠.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말이 더 설득력있게 느껴지는 결과입니다.

강남통신 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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