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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첩’은 푸젠성 방언 중국의 생선 소스였다

중앙일보

입력

화제의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에서 ‘차줌마’가 토마토케첩을 만드는 모습에 경탄을 금치못했다는 시청자가 적지 않다. 의레 사먹는 것이라 여겼던 것을 직접 만든다는 행위 자체에 허를 찔렸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스탠퍼드대 언어학 교수인 댄 주래프스키가 일곱살 짜리 친구 딸의 질문에서 받은 느낌도 비슷한 것이었으리라. “왜 케첩병에는 토마토케첩이라고 쓰여있어요? 한 말을 또 하는거 아니에요?”

홍콩 출신의 친구 설리는 한 술 더 떴다. 케첩이 중국어라는 것이다. 케(ke)는 광둥어로 ‘토마토’를 가리키는 단어의 일부이며, 첩(tchup)은 광둥어의 ‘소스’라는 단어와 똑같다는 것이다. 그러니 미국 맥도널드를 처음 방문해 “케첩을 영어로는 뭐라고 하느냐”고 물어본 것도 설리 입장에서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이야기는 계량언어학계 석학에게 영감을 줬다. 언어와 음식과 역사지리와의 상관관계를 종횡무진 파고드는 그의 강의 ‘음식의 언어(Language of Food)’는 스탠퍼드대에서 7만 명이 넘게 수강한 최고 인기 교양과목으로 등극했다. 이 책은 우리가 별 생각없이 지나쳤던 음식 이름 하나에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얽혀있는지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앞서 나온 토마토케첩의 경우만 보더라도, ‘케’는 푸젠성(福建省) 방언으로 ‘저장된 생선’을. 베이징어로 지(汁?zhi)라고 발음되는 ‘첩’은 푸젠성 방언과 광둥어로 ‘소스’를 뜻한다. 그럼 이 중국의 생선 소스가 어떻게 지금 같은 토마토케첩이 된 것일까. 17세기 영국과 네덜란드의 상인들은 인도네시아 등지로 퍼져있던 이 소스를 유럽에 소개했고 이를 모방한 소스가 유럽 각국에서 나오기 시작했는데 생선 대신 버섯이나 호두가 쓰이다가 토마토를 더한 것이 가장 인기를 끌게 됐다는 것이다.

케첩이란 단어도 영국에서는 ‘ketchup’, 미국에서는 ‘catsup’이라고 쓰이다가 1910년 무렵 ‘ketchup’이라고 쓰기 시작한 하인스가 시장을 지배하면서 대세가 됐다는 설명도 눈길을 끈다.

언어학자의 시선으로 레스토랑 메뉴판을 분석한 대목은 확실히 흥미롭다. 그는 메뉴판만 보아도 그저 한끼 때우는 곳인지, 품격있는 고급 레스토랑인지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테면 요리를 설명하는 데 더 긴 단어를 쓸수록 음식 값은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어떤 음식을 묘사하는데 평균 길이보다 글자 하나가 더 늘어날수록 18센트(약 70원)가 비싸진다.

그는 메뉴에 ‘환상적인’ ‘풍미있는’ 같은 단어가 들어있으면 조심하라고 귀띔한다. 구체적인 긍정적 특성이 없는 부족함을 은폐하기 위한 포장일 수 있다는 것이다. 높은 가격과 상관관계가 있는 단어는 ‘환상적인’ 같은 형용사가 아니라 ‘바닷가재’ ‘송로버섯’ ‘캐비어’처럼 내용물을 제대로 묘사하는 단어다.

저자는 사람들이 정크푸드나 디저트에 대한 SNS 리뷰에서는 왜 ‘마약’이나 ‘중독’ 같은 말을 많이 쓰는지도 분석해 놓았다. 식품을 탓함으로써 튀긴 음식이나 설탕 범벅의 스낵을 먹는 자신들의 죄와 자신들을 분리하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그건 내 잘못이 아냐. 컵케이크가 그렇게 만들었어.” 주래프스키 교수는 여성이 남성보다 마약 관련 은유를 더 많이 쓰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건강식품이나 저칼로리 식사에 적응하라는 압박이 여자들에게 더 심하다는 암시”라고 설명한다. 왠지 뜨금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글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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