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그림 감상, 드라마 감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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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호 04면

“그림 보는 거, 어렵지 않습니다. 드라마 보는 것과 똑같습니다. 내용이 궁금하다고 줄거리만 찾아 읽거나 빨리 돌려보지는 않지요? 처음부터 찬찬히 보면 어느새 이해가 됩니다. 눈으로 ‘식별’하려고 하지 마세요. 애들 데려오지 말고, 혼자 와서 마음으로 보세요.”

23일 개막한 마크 로스코 전시회장에서 만난 대중철학자 강신주 박사의 설명이었습니다. 1년여 동안 마크 로스코의 글과 그림에 푹 빠져 지냈다는 그입니다. 로스코도 마침 비슷한 얘기를 했네요. “나는 내 그림들을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그림 안의 형태들은 연기자들이다.”

좋은 그림에서는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예술가의 총기가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좋은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전시를 위해 도톰하면서 정갈한 하드커버 두 권으로 묶여 나온 『MARK ROTHKO』(민음사)에서는 로스코의 말소리가 두런두런 들리는 듯했습니다.

전시장의 마지막 코너를 장식하고 있는 작품은 붉은 핏빛의 ‘무제’였습니다. 자살하기 직전 그린 작품이어서였을까요. 그 그림에서는 기운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W. 워즈워스의 시 한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초원의 빛이여! / 꽃의 영광이여! / 다시는 안 온다 해도 서러워 말지어다. / 차라리 깊이 간직한 심오한 힘을 찾으소서./…”

우리 기쁜 젊은 날의 ‘꽃의 영광’이 문득 그립습니다.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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