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직계 존비속 고지 거부하면 재산공개 하나마나 아닌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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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위 공직자 1825명이 지난해 재산을 공개했다. 평균 재산이 12억9200만원으로 1년 전보다 1400만원 늘어났다. 땅값 상승과 급여 저축 등으로 66%(1212명)가 재산을 불렸기 때문이다. 1억원 이상 재산이 늘어난 공직자도 20.6%(377명)였다. 고위 공직자들이 일반 국민과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같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고위 공직자라고 재산이 늘어난 걸 무턱대고 의혹의 눈길로 바라봐선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직계 존비속 재산 고지를 거부한 고위 공직자가 491명(26.9%)에 달한 점은 재산 공개의 근본 취지를 위협하는 큰 문제다. 이 비율은 지난해 27.0%와 큰 차이가 없고 2011년 26.0%, 2012년 26.6%보다 높다. 정부가 신고를 거부할 수 있는 ‘분리 거주 기간’을 신고일 이전 6개월에서 1년 이상으로 늘렸음에도 거부율이 줄지 않고 있어 심각성이 더하다. 국회의원(37.3%)과 법원 고위 공직자(46%)의 거부율이 유독 높은 것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공직자 가족 보호 차원에서 독립 생계나 타인 부양 등의 경우 직계 존비속의 재산 비공개를 허용하고 있다. 법 논리상으로는 틀린 게 아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고위 공직자가 저지른 비리 사건에 직계 존비속이 연루된 경우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고위 공직자가 부정한 돈을 직계 존비속에게 명의신탁하거나 변칙 증여한 뒤 고지를 거부하면 밝혀낼 길이 없다. 특정 기업의 주식을 자식 이름으로 보유한 공직자가 이를 숨긴 채 해당 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자리에 있어도 막을 길이 없다면 제대로 된 나라인가.

 고위 공직자들은 직계 존비속의 재산까지 합산하면 자신의 재산 규모가 부당하게 부풀려진다고 변명한다. 하지만 국민이 관심을 갖는 건 액수가 아니다. 공직자가 부모·자식의 재산까지 낱낱이 밝혀야 할 이유는 본인의 재산 형성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는지, 보유한 자산으로 이해충돌이 발생할 우려는 없는지 국민이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정 직급 이상은 직계 존비속의 재산 공개를 의무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