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白虎隊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일본 후쿠시마(福島)현 아이즈와카마쓰(會津若松)시는 무사도 정신의 본산으로 유명하다. 그 상징이 시내를 내려다보는 이모리야마(飯盛山)의 백호대(白虎隊) 묘역이다.

백호대란 19세기 아이즈번(藩)이 엘리트 무사를 양성하기 위해 10대 청소년으로 구성한 소년병 부대다. 이들이 널리 알려진 것은 아이즈번을 중심으로 한 바쿠후(幕府)정권 지지파와 왕정복고를 내세운 신정부군 사이에 벌어진 보신(戊辰.1868~69)전쟁에서다.

신정부군에 패해 이모리야마로 피신한 20명의 백호대 패잔병은 자신들의 본거지인 쓰루가조(鶴ケ城)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봤다. 낙성(落城)을 직감한 이들은 집단 자결하고 만다. 그 중 한 명이 살아남아 이들의 최후를 생생히 전했다. 여기까지가 백호대의 순수한 '충성 스토리'다. 후세에 이들을 추모하는 과정에서 변질이 나타난다.

우선 자결이라는 행동 자체에 의미가 주어졌다. 묘역에는 자결한 19명의 묘비가 맨 앞줄에 배치됐다. 싸우다 전사한 더 많은 백호대원들의 묘비는 오히려 뒤편이나 옆으로 비켜나 있다. 이들의 집단자결은 유럽에까지 알려진다. 1930년께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백호대의 우국충정에 감명받아 파시스트당의 상징인 대형 솔개상을 보냈다. 비슷한 시기 주일 독일대사관도 기념비를 세워줬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군은 일본인들의 군국주의 정서를 부추긴다며 기념물들을 철거했다. 그러나 미군정이 끝나자 이들은 곧 원상복구됐다. 지금도 화강암 기둥 위에 올려진 파시스트당의 솔개상 앞엔 기념사진을 찍는 참배객들이 북적인다. 백호대의 순수한 충성심이 맹목적인 애국심으로 포장되면서 군국주의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의 보수화는 물론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얼마 전 중의원에선 '전시 동원법'이라 불리던 유사법제(有事法制) 법안이 90%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북한의 핵 위협을 기화로 보수 우익이 힘을 얻었기 때문일까. 일본인들은 '애국도 못하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일본에서 애국과 군국은 순식간에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백호대 묘역은 잘 보여준다.

남윤호 정책사회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