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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전국 첫 조명 규제 … 실효성은 의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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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21일 밤 서울시립대 이연소 교수가 서울 용산구의 한 주택가에서 창문으로 스며드는 빛의 밝기를 측정하고 있다. 이 교수는 “기준치 이상의 야간 조명은 신체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준다”고 했다. [김지은 인턴기자]

지난 21일 오후 9시 서울 용산구 후암동의 한 주택가. 10~20m 간격의 전신주에 매달린 보안등 불빛들로 인해 골목이 대낮처럼 밝았다. 주황색 전등빛이 한 가정집의 1층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서울시립대 이연소(디자인대학원) 외래교수가 창문 바깥쪽에 조도계를 가져다 댔다. 102럭스(㏓). 서울시가 정한 주택가 빛방사허용기준(10㏓)의 10배가 넘는다. 이 교수가 “이 정도 밝기면 집 안으로 스며드는 침입광(侵入光)만으로도 불면증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일대를 돌며 보안등의 주택가 침입광을 측정해 보니 조도가 80~110㏓로 측정됐다. 공원 산책로에 설치된 가로등의 조도가 3~6㏓인 걸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이 동네에 사는 주민 양모(54·여)씨는 “보안등 불빛 때문에 등을 꺼도 방 안이 환하다. 커튼을 쳐도 소용이 없어 안대를 쓰고 잠을 잔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조명환경관리구역 지정안이 빛공해 방지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뒤 다음달 말 시행된다. 시 전역을 생활환경에 따라 1~4종으로 나눈 뒤 등급별로 조명의 밝기 허용 수준을 차등 적용한다는 것이다. 전국 지자체 중에선 처음이다. 지정안이 시행되면 가로등·보안등 조명은 주거지역(3종)에선 10㏓ 이하, 상업지역(4종)은 25㏓ 이하로 낮춰야 한다.

 광고조명(점멸·동영상)의 경우 주거지역은 1000㏅/㎡(칸델라)이하, 상업지역은 1500㏅/㎡ 이하가 적용된다. 조명 종류별로 측정단위가 다른 이유는 국제기준과 학계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야간의 밝은 불빛은 수면 유도 호르몬 분비를 낮추고 생체 리듬을 혼란시켜 불면증·두통·우울증 등을 유발한다. 고려대 이은일(예방의학과) 교수는 “빛공해가 심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 사는 이보다 유방암 발병률이 20%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지난해 공개한 한반도 위성사진. 서울의 밝은 야경이 두드러진다. [중앙포토]

 지난해 9월 박원순 서울시장은 인공조명으로 인한 피해인 ‘빛공해’를 악취·소음과 함께 3대 생활공해로 정했다. 빛공해 관련 민원이 지난해에만 1571건이 접수되고, 시내 광고조명 중 44%가 기준치를 넘어선다는 실태조사 결과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시행에 앞서 넘어야할 산이 많다. 일부에서는 시가 자영업자와 조명업계 등의 눈치를 보다가 현행 기준을 너무 느슨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한국조명연구원 공효주 연구원은 “독일 등 국제적 기준(주거지역 1~2㏓)과 차이가 많이 나는데다 옥외광고물법의 승인을 받은 광고조명(허가분)만 대상이라 전체의 30%밖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10m 이하 크기의 작은 간판은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지정안의 유예기간(5년)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기존에 설치된 간판은 향후 5년간 빛방사 허용기준을 어겨도 별다른 제재가 없지만, 새로운 간판을 설치하는 업체는 기준을 지켜야만 한다.

 서울시와 자치구 간 엇박자도 문제다. 빛공해 문제를 전담하는 주무 부서가 자치구마다 중구난방이다. 종로·광진·동작구청에서는 환경과가 관련 업무를 맡고 있고, 양천·관악·강남구에서는 건축과가 담당하고 있다. 시는 각 자치구에 단속에 쓸 휘도기(대당 1000만원)도 마련해줘야 하나 올해 예산도 편성하지 못했다. 한국옥외광고협회중앙회 이대인 부회장은 “과거 간판 개선사업이 가이드라인만 만든 상태에서 사문화(死文化)돼버린 것처럼 이번 조명규제도 마찬가지가 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장혁진 기자, 김지은(인하대 건축학) 인턴기자 analo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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