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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남북 고위급회담, DJ 정상회담 … 집권 3년차에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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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럼 고문인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이 지난 20일 포럼 창립 4주년 학술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2년의 대북정책을 평가하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방안이 논의된 회의에서 백영철 포럼 이사장은 “포괄적·대승적·호혜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앉은 사람 왼쪽부터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 김근식 경남대 교수, 고유환 동국대 교수, 하영선 서울대 명예교수, 권만학 포럼 회장, 박영호 포럼 연구원장, 최진욱 통일연구원장, 문정인 연세대 교수. [강정현 기자]

노태우 정부는 집권 3년 차인 1990년 남북 고위급회담을 열었다. 김대중 정부도 집권 3년 차에 사상 첫 남북 정상회담(2000년)을 개최했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3년째를 맞는 시점에 북한의 천안함 폭침 도발이 있었다. 취임 3년 차인 올해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 접근 구상과 남북관계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지난 20일 ‘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남북관계 개선방안’을 주제로 열린 한반도포럼 창립 4주년 학술회의에서도 이 부분에 초점이 모아졌다.

 처음 주제 발표에 나선 최진욱 통일연구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지난 2년은 ‘기술’보다는 남북관계의 신뢰 정착을 위한 ‘체력’을 비축하는 기간이었다”며 “노태우 정부의 남북 고위급회담이 3년 차에 이뤄진 점을 감안하면 올해 남북관계에서 중요한 고비를 맞게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도 “올해 승부수를 던지지 않고는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지난 2년을 돌이켜보면 현 정부는 5년 단임 정권이 아니라 10년 정권으로 착각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비판했다. 북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과 인식이 원칙을 강조하는 데 과도하게 집중됐다는 얘기다. 토론자로 나선 하영선 서울대 명예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통일방안은 바둑판을 좁게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남은 3년 동안에는 보다 나은 길을 찾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지난 2년간의 대북정책을 평가하는 대목에선 날 선 공방이 오고 갔다. 권만학(경희대 교수) 포럼 회장은 “박근혜 정부는 2년 차인 지난해 대북정책의 첫 단계인 남북관계 발전과 둘째 단계인 평화 정착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셋째 단계인 통일기반 구축으로 급도약했다”며 대북정책이 통일 준비로 급선회함으로써 혼선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또 “북한의 호응을 유도할 구체적 유인이 없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오히려 불신 프로세스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2013년 남북 장관급회담이 우리 정부의 ‘격(格)’ 문제 제기로 결렬된 것과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의 북한 응원단 문제 등 지난 2년 동안 두세 차례의 돌파구를 놓친 것이 아쉽다”고 했다. 이에 대해 최진욱 원장은 “남북관계가 느려 보이지만 신뢰가 축적되면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발전할 것”이라고 맞섰다.

 남북관계를 개선할 대안을 놓고도 논쟁이 펼쳐졌다. 북한을 정상국가로 인정하는 문제가 제기되자 열기가 더해졌다. 권만학 회장은 “북한을 정상국가로 인정하고 비핵·평화를 맞교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영준 국방대 교수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지만 북한도 우리의 국가성을 인정하는 게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반대 도 만만치 않았다.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는 “권 회장의 의견이 정치적으로 가능할지에 의문이 있다”며 “국민 여론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장 교수는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고민스러워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을 ‘실패한 국가’로 인정하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김정은 체제의 전망을 두고는 입장이 엇갈렸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북한이 사실 실패한 국가지만 체제 안정을 약속하고 지원하면 개혁·개방을 추진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국가를 견제할 수 있는 시민사회가 생겨 성공한 국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김정은 정권이 실패한 것을 회복하기보다 점점 더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우리가 섣불리 과감한 정책을 추진하면 오히려 남북 간의 간극을 더 벌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조언도 잇따랐다. 백영철(건국대 명예교수) 포럼 이사장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북한이 극도로 민감하게 생각하는 체제 붕괴나 흡수통일, 3대 세습, 인권 문제 등의 거론은 자제해야 한다”며 “마치 지뢰밭을 밟는 것과 같아 여타의 진전을 수포로 돌아가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한·미·중 사이에 그동안 북핵 공조가 취해졌는데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인 사드(THAAD)의 주한미군 배치 논란으로 새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개성공단 임금협상은 북한이 우리와 대화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며 이를 대화 재개의 돌파구로 삼을 것을 주문했다. 진희관 인제대 교수는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자체들의 남북 교류 움직임도 활성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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