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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바깥에서 보는 한국

임금 인상을 둘러싼 한국 정부의 이중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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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에이단 포스터-카터
영국 리즈대 명예 선임연구원

임금 문제가 한국에서 뉴스다. 한국 정부는 두 전장(戰場)에서 임금 문제에 대해 강경하다. 정부는 한국에서는 더 높은 임금을, 한국보다 훨씬 가난한 북한에서는 임금 상한선을 높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한국 정부의 승산은 그리 크지 않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안 되는 경제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국내 최저임금을 높이려고 한다. 근로자들의 주머니에 돈이 들어가면 근로자들이 지출을 늘리게 될 것이며, 그 결과 고질화된 소비 부족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에서다.

 임금 인상은 경기 부양을 꾀하는 최경환 부총리의 주요 정책이다. 지난주 그는 한 오찬에서 5대 경제단체장들과 만나 고용주들을 설득하기 위해 열변을 토했다.

 신문 제목을 보면 최 부총리의 호소는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토론은 뜨거웠다. 재계 인사들은 회의적이었다(충분히 예상할 만한 일이다.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칠면조를 보았는가). 그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댔다. “임금 인상은 경쟁력을 저해한다. 특히 중소기업은 임금 부담 때문에 해고를 단행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임금이 인상되면 강성 노조가 추가 임금 인상을 요구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임금 인상은 규제 철폐와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등이 포함된 개혁 패키지의 일부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렇지 않다면, 임금은 노사 협상에 맡겨둬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최 부총리는 듣기 싫은 말만 잔뜩 듣고 자리를 떠야 했다. 향후 모임이 남아 있지만 과연 무엇을 성취할지는 불투명하다.

 솔직히 말하면 한국은 상당히 부자 나라인데도 최저임금은 낮다. 2010년부터 매년 5~7% 올랐지만, 아직 시간당 5580원에 불과하다. 한 달을 기준으로 하면 1000달러(약 113만원)가 조금 넘는 돈이다.

 서울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만 운전하면 도달하는 그곳에선 한 달에 1000달러 버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부자다. 북한 주민 대부분이 얼마나 버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추정할 수밖에 없다. 공식 환율을 적용하면 0에 가깝다. 딱 한 장소에서 남북 경제가 만난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남북 합작 프로젝트인 개성공단에서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5만4000명의 근로자들은, 북한 기준으로는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받는 임금은 세계에서 바닥권이다. 그게 개성공단의 세계적 경쟁력의 비결이요, 124개 한국 중소기업이 진출한 이유다.

 개성의 기본임금은 한 달에 70.35달러다. 한국의 최저임금 근로자가 하루 반이면 버는 돈이다. 초과근무를 하면 두 배인 155달러까지 받을 수 있다. 북한 정부가 40%가량 떼내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개성공단에서도 임금은 정치적 논쟁거리다. 개성공단은 남북 공동으로 운영하는 게 원칙이지만 지난해 11월 북한은 일방적으로 노동규약을 바꿨다. 특히 5%인 최저임금 인상 상한선을 폐지했다. 지난달에는 월 최저임금을 70.35달러에서 74달러로 5.2% 인상하고 초과근무 수당 또한 8.60달러 올린 164달러로 하겠다고 통보해 왔다.

 5.2%는 통상적인 연 5% 인상보다 미미하게 더 늘어난 수치다. 몇 푼 되지 않는다. 한국 고용주들은 종종 개성공단 근로자들의 숙련도와 성실성을 칭찬한다. 그들이 ‘쥐꼬리만 한’ 164달러는 받을 자격이 있는 게 아닐까. 누가 부인할 것인가.

 원칙이 걸려 있는 갈등이라는 게 문제다. 2013년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무모하게 공단으로부터 인력을 철수시켰다. 이런 일방적 사태의 반복을 막기 위해 새로운 경영 구조가 협상 끝에 들어섰다. 이를 무시하는 김정은의 터무니없는 행동에 박근혜 대통령은 분노했을 것이다. 갑자기 북한이 완전한 주권의 행사를 요구한 것이다.

 난처하게 된 한국은 단호한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결정적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4월 10일이다. 그날 근로자들이 3월분 임금을 받게 돼 있다. 서울은 북한의 5.2% 인상 요구를 받아들이지 말라고 기업들에 경고했다. 이를 어기면 모종의 처벌이 따를 것이다. 기업들이 정부 지침을 따른다면 아마 평양은 틀림없이 보복할 것이다. 어쩌면 또다시 근로자들을 철수시키거나 다른 방식으로 개성공단을 괴롭힐지 모른다.

 개성공단 임금 문제는 신임 통일부 장관에게 첫 번째 도전이 될 것이다. 학자 출신인 홍용표 장관은 전임자인 류길재 전 장관보다 더 강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최근 자신이 “비둘기파도 매파도 아닌 올빼미파”라고 스스로를 정의했다. 올빼미는 지혜와 균형 감각을 상징한다. 그가 장기적인 안목으로 생각하고 형식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를 기대한다.

 개성공단은 언제 꺼질지 모르는 남북 협력의 마지막 촛불이다. 금강산 관광과 마찬가지로 개성공단마저 꺼져버린다면 어둠이 내려올 것이다. 결코 좋을 수 없는 일이다. 서울은 이를 악물고, 얼마 안 되는 임금 인상을 허용하고 정말 짜증 나게 하는 북한의 젊은 지도자가 진짜 바라는 게 뭔지 알아내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에이단 포스터-카터 영국 리즈대 명예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