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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만 키우는 투기 정부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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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새 정부는 시중에 돈을 잔뜩 풀어놓은 채 세금으로 투기를 잡겠다는 DJ 정부의 실패한 정책을 답습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투기꾼들의 면역성만 키워 이제 웬만한 대책에는 눈하나 깜짝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실제로 양도소득세와 종합토지세.재산세 등을 무겁게 물린다는 발표와 건설사.떴다방.전주(錢主) 등에 대한 각종 세무조사 방침이 쏟아지고 있지만 투기는 잡히지 않고 있다. 그나마 부동산 가격이 오를대로 오른 뒤에 투기지역 등이 지정돼 뒷북 대응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도 "투기꾼들 사이에는 세금을 내고도 이익이 많이 남는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며 "세금으로 투기를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 데도 정부는 당장 해야할 조치를 이런 저런 이유로 미루고 있다. 정부 부처 간에 대책을 서로 떠넘기는 경향도 있다.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지방에는 아직 미분양 아파트가 있고, 부동산 경기를 심하게 누르면 그렇지 않아도 안좋은 경기가 더욱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투기가 판을 치는데 건설 경기 얘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아파트.주상복합의 분양권 전매를 금지하는 조치를 서두르고, 서울 강남지역을 대신할 수 있는 신도시를 개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주택담보 대출도 바짝 조여야 한다고 말한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서울.수도권.충청권을 포괄적으로 투기지역으로 지정하고 재건축 요건을 엄격히 적용하는 일관된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분양권 전매 전면금지 필요=투기의 핵심은 분양권과 재건축이다. 분양권 전매 금지는 투기과열지구에 한해 적용된다. 그러다 보니 투기자금이 투기과열지구가 아닌 곳으로 옮겨다니고 있다. 정부는 투기과열지구를 수도권.충청권 대부분 지역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지만 좀더 서두르고, 지역도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다.

주상복합 아파트의 투기도 심각하다. 정부는 최근까지도 "주상복합 분양권 전매 금지를 검토한 적 없다"고 했다가 이번주 들어 처음으로 "주상복합 거래동향을 파악하고 있으며, 필요하면 조치를 취하겠다"고 뒤늦게 나섰다.

강남 대신할 신도시 필요=이달초 김포.파주를 신도시로 개발하겠다는 정부 발표는 되레 이 지역 투기를 부추겼다. 그리고 정부의 의도와 달리 서울 강남지역의 집값을 잡는데도 효과가 없다. 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 사장은 "김포와 파주는 강남 수요를 잠재울 지역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강남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버금가는 환경을 갖춘 신도시 개발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금리 내리고 투기를 어떻게 잡나=김진표 경제부총리는 20일 재경부 간부회의에서 "부동산 투기를 잡을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최근 콜금리를 4. 25%에서 4%로 낮추는 등 돈줄을 풀면서 투기를 어떻게 잡는다는 것인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박사는 "지난해 집값 상승 때는 시중 유동자금이 2백20조원대였으나 최근에는 3백80조원대로 알려져 있다"며 "유동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더 큰 우려는 최근 뛰고 있는 부동산의 거품이 꺼질 경우다. 시중 자금이 부동산에 잠기고, 부동산을 담보로 잡고 있는 금융회사들이 부실해지기 시작하면 일본식 장기 불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현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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