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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소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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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쐬주 한잔 오케이?' 퇴근 무렵이면 주당(酒黨)들을 참지 못하게 만드는 말이다. 소주하면 '두꺼비'였던 시절이 있다. 1954년 탄생한 두꺼비는 진로소주의 상징이다. 두꺼비의 인기 때문에 91년까지 지방 소주 보호 제도가 있을 정도였다.

증류주인 소주는 고려 말인 1300년께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민들이 소주를 본격적으로 마시게 된 것은 조선 말기에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부터라고 한다.

중국에선 이보다 조금 앞선 원(元)나라 때 시작됐다고 명(明)나라 학자 이시진(李時珍)은 '본초강목'에 적고 있다. 막걸리.맥주.청주.와인 등 양조주(발효주)의 기원은 신화시대로 거슬러 가지만, 양조주를 증류한 소주.보드카.위스키 등 증류주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소주는 세번 고아 내린 술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燒酒'가 아니라 '燒酎'로 쓰는 게 맞다는 주장도 있다. '酎'는 세번 빚은 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안동소주는 '燒酎'라고 쓰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燒酎(Shochu)'라고 쓴다.

흔히 희석식 소주는 화학주라고 오해한다. 그러나 희석식 소주는 96%까지 증류한 주정에 물을 타 20~30%로 묽게 한 것이고, 증류식 소주는 70%짜리 주정을 30% 정도로 희석해 만든다. 화학반응을 통해 만들어지는 소주는 없다.

소주는 한국인을 세계적인 주당으로 오해받게 만들기도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99년 펴낸 알코올 보고서에서 15세 이상 한국인의 한해 알코올 소비량이 1인당 14.4ℓ(96년 기준)로 슬로베니아(15.15ℓ)에 이어 세계 2위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WHO의 통계는 소주의 원료인 주정이 'Spirit(증류주)'로 번역되는 바람에 주정과 소주가 이중계산되면서 부풀려진 것이었다. 그해 주정 출고량(1인당 6.8ℓ)을 빼면 알코올 소비량이 7.6ℓ로 줄면서 세계 랭킹도 40위권으로 뚝 떨어진다.

진로가 지난 14일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미국 금융회사인 골드먼삭스 측이 채권자 자격으로 낸 법정관리 신청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진로 측은 외국 자본의 횡포라며 한때 소주 생산을 중단하기도 했다.

그러나 진로가 소주 이외의 사업에 손대다 빚을 많이 졌던 게 법정관리행의 근본 원인이다. 두꺼비에 대한 주당들의 애정만으론 부족했던 것일까.

이세정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