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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정주영·구인회처럼 … 쏜살 같은 혁신으로 장기 정체 뚫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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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병철 삼성 회장의 반도체(왼쪽부터),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의 서산 간척지, 고 구인회 LG회장의 라디오는 1세대 기업인의 과감한 도전과 혁신의 결과물이다. [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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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2년 미국 실리콘밸리의 휴렛팩커드.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은 컴퓨터만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는 사무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귀국한 그는 1983년부터 반도체 사업을 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64KD램을 개발했다. 하지만 사업은 녹록치 않아 누적 적자가 쌓였다. 반도체 값은 3달러대에서 30센트로 폭락했다. 모두들 ‘도박’이라며 사업을 말렸다. 경제관료들까지 반대하면서 삼성에선 위기감이 일었다. 그러나 이 회장은 1987년 기흥의 3라인 공장을 건설하라고 지시했다. 1988년 기흥 공장에서 반도체 생산을 시작하면서 기회가 찾아왔다. 세계적인 PC 붐이 일어 났던 것이다. 당시 결정은 오늘날 삼성의 초석이 됐다.

 # LG그룹은 ‘국내 최초’란 수식어를 달고 성장했다. 화장품에서 라디오·냉장고 생산 등이 그렇다. 고(故) 구인회 창업자는 1958년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를 세웠다. 국내 최초로 라디오를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전자제품은 고도 기술력이 필요하니 한국에선 시기 상조”라는 반대가 잇따랐다. 하지만 구 회장은 “누군가 할 것이라면 우리가 하자”며 도전했다. 기회는 준비한 이에게 찾아왔다. 당시 정부는 국민에게 여러 정책을 알리고 싶어했다. 구 회장은 공보부 장관을 만나 라디오 5000대를 기증하면서 농어촌 라디오 보내기 운동을 했다. 결과는 대박이었고 금성사는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4교대 작업을 벌였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대한민국 1세대 기업가들의 개척자 정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비틀대는 한국경제가 활로를 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래픽 참고> 지난 1980년대의 경제성장률은 평균 9.7%로 쾌속질주를 했다. 1990년대에도 6.6%씩 쑥쑥 자랐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경고등이 켜지더니 ‘글로벌 금융위기’ 태풍이 불어닥친 2008~2013년엔 3.1% 성장하는데 그쳤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게 심각하다.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장은 “한국경제를 견인한 석유화학·철강·반도체 등의 힘이 약해졌기 때문”이라며 “지금까지의 성장 전략이 한계에 부딪혔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은 그동안 ‘추격자 전략’을 펼쳤다. 포스코가 신일본제철을, 삼성이 소니·애플을, 현대차가 토요타 등을 추격하며 이만큼 왔다.

 하지만 이젠 우리보다 더 빠른 추격자가 맹렬 질주를 하고 있다. 바로 중국이다. 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중국은 스마트폰·철강·자동차·조선해양 등을 가리지 않고 한국의 최대 경쟁국으로 부상했다. 만리장성 벽에 막혀 한국의 성장이 벼랑 끝에 봉착한 것이다.

 국민의 주머니도 그만큼 가벼워졌다. 1960년 1인당 국민총소득은 80달러였다. 지난해엔 2만8000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증가 속도는 갈수록 더뎌지고 있다. 올림픽 특수 등이 불었던 1985년에서 1990년까지의 총소득은 171% 급증했다. 그러나 2010~2014년의 소득 증가율은 26% 선에 그친다.

 그렇다고 두 손 놓고 있던 건 아니다. 정부와 기업들은 2000년대 이후 ‘새로운 먹거리 산업’을 열심히 찾아왔다. 구체적으로 ‘IT(정보기술)·BT(생명공학)·NT(나노기술) 등 6개 차세대 성장산업의 육성(2001년)’ → ‘지능형로봇·미래형 자동차 등 44개 육성 품목 선정(2003년)’ → ‘신재생에너지 등 녹색기술과 방송통신융합 등 17개 산업 발전(2009년)’ 등이 그렇다. 지난해엔 장관들이 모여 5G이동통신과 스마트 자동차·사물인터넷을 키우기로 했다. 하지만 속도는 더디다. 최윤희 산업연구원 미래산업팀장은 “그동안 미래산업 창출이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R&D) 지원 중심으로 추진돼 왔다”며 “인력 양성과 수요 창출·인허가 개선 등 가치사슬의 전반에 걸친 변화는 모자랐다”고 지적했다.

 백윤석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과거 산업주도권의 원동력이던 창조적 기업가 정신을 회복해 과감하고 신속한 장기투자 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들 역시 이런 상황을 절감하면서 끊임없이 ‘돌파구 기회’를 찾고 있다. 전쟁터 같은 자동차 시장에서 경쟁하는 현대기아차의 경우 ‘친환경차’에서 새로운 기회를 열려 한다. 현재 7개인 하이브리드·전기차·수소연료전지 차량을 2020년까지 22개로 늘릴 전략이다. 특히 광주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해 한국을 ‘수소차·수소경제 강국’으로 키워 차세대 시장을 선점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2000년대의 중국발 호황이 끝나고 어려움을 맞고 있는 포스코는 미개척 분야를 겨냥하고 있다. 신소재인 리튬 생산이 대표적이다. 리튬은 PC·스마트폰 같은 전자기기에 사용되는 배터리의 원료다. 포스코는 바닷물에 화학반응을 일으켜 리튬을 뽑아내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처럼 발빠른 도전과 혁신, 실행력이야말로 바로 ‘성장 정체의 덫’에 걸린 한국경제를 자극하는 촉매들이다. 강진구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궁(國弓)의 비법인 ‘방전요속(放箭要速)’을 강조했다. 뒷손이 화살을 놓는 순간을 앞 손이 알지 못할 정도로 신속하게 의사 결정을 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강 위원은 “날마다 새로운 혁신 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글로벌 시장에서 혁신의 속도를 최대한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준술 기자 jso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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