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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국회] 난자채취,보호해야 할 개인 인권은 어디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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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게임의 진실, 혹은 거짓
보호해야할 개인의 인권은 어디로?

네이쳐 학술지에서,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논문과 관련하여 공식 입장을 표명하였다. 황 교수의 동의하에, 문제가 되는 부분만 삭제하고 논문을 사실상 원문대로 학술지에 게재 검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여성 연구원의 난자기증이 있었다는 것, 매즈메디의 난자채취가 애초의 주장과는 달리 대가성으로 이루어졌다는 것, 그리고 당 병원의 원장이 40%에 해당하는 지분을 약속받았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난 상태지만. 네이쳐지가 입장을 표명할 당시만 해도 이러한 사안들이 유력할지언정 그때까지는 심증에 머물러 있던 상황이었다.

한편, 미 법원에서는 생성후 15일 이전의 난자는 생명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법안이 검토되었다. 황우석의 연구에 자극을 받은 미 연구기관들의 성토에, 당국이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토대를 마련해 주는 순간이었다.

난, 네이쳐지의 이같은 입장표명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언제는 황우석 교수의 난자채취와 관련하여 심각한 윤리문제가 우려되므로, 당 사안이 명백해질 때 까지는 논문게재를 유보할 것이며 심지어는 취소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보내지 않았었나. 일단 선정된 논문이 추후 거짓으로 판명되어 학술지에서 삭제조치된다는 것은, 당 논문은 물론이요 이후에도 동일인이 유사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하다는 극단의 조치였기에, 네이쳐 지 스스로 최고수준의 제재를 검토할 만큼 위중한 것이라면 모르긴 해도 황교수가 윤리적으로 심각한 잘못을 저지른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랬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자, 사실상 관련법 저촉엔 큰 하자가 없고 다만 논문 도입부에서 황우석 교수가 선언했던 '연구에 사용된 난자는 모두 기증받은 것이며, 그로써 본인은 물론 그 가족이나 친지에게 어떠한 댓가도 지불된 바 없다' 는 문장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난자를 제공하는 댓가로 150만원을 지불하였기 때문에, 사실상 매매행위에 해당하는 것이며 따라서 황교수의 위 문장은, 거짓말이 된다는 것이었다.

난, 황우석이 잠적했으면 싶었다. 적어도 냄비가 식을 때 까지만이라도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대신 관계자들로 하여 그의 입지를 강화시켜 주기를 기대했다. 미국이 그러했던 것 처럼, 합법적인 토대를 마련한다든지, 난자취득 문제와 연구성과 부분을 확연하게 분리해서 한쪽이 다른쪽에 누를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든지.

외국에 살면서, 간혹 난자제공을 희망하는 대학병원의 광고를 보아 왔지만 모두 일정액의 댓가를 지불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솔직히 그 부분만큼은 그렇게까지 문제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글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겠다). 문제가 있었다면 불임클리닉을 위해서가 아니라 실험실 연구용으로 난자를 사용했다는 것, 그리고 난자를 제공하는 본인에게 채취된 난자의 용도에 대해서도, 또 난자채취의 과정, 후유증 그리고 부작용에 대해서도 제대로 인지시키지 못했다는 것. 그럼 여기에선, 자신이 제공한 난자가 100% 불임클리닉에 사용된다는 걸 확인할 방법이 있을까. 외람된 얘기지만, 없다. 난자 제공자는 물론이요 이를 이용하는 불임부부 모두 익명성을 최우선의 조건으로 하기 때문에, 병원은 이들의 신상에 관련해서는 어떠한 정보도 외부에 누출시켜서는 안된다. 역으로, 자신이 제공한 난자가 어디에 사용되는지에 대해서도, 병원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수 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

누구보다도 난자 제공과 관련한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네이쳐 지가, 유독 황우석의 연구용 난자의 취득을 문제삼았다. 그 모든 경위를 세세하게 밝히기를 요구할 경우 자칫 난자를 제공한 여성들의 신상에 대한 접근또한 불가피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미국의 어떠한 법도 자국 병원으로 하여 기증자의 신상을 요구하거나 그 용도를 (이와 관련하여 심각한 불법행위가 적발되었고 그 물증을 확보하고 있지 않은 한) 조사할 권리를 부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따라서 난, 국내에서도 무엇보다 난자를 기증한 여성들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하여 특히 미 학계의 해명 요구에 난색을 표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상황은 나의 바램과는 정반대로 전개되어 갔다. 기어이 난자를 제공했다는 연구실 여성의 신상이 공개되었고, 연구원은 스스로 자발적이었음을 강조했지만 이미 황우석에겐 불명예의 족쇄가 채워져 버린 후였다. 물론, 난자를 제공한 여성 연구원의 신상도, 본인이 그토록 익명으로 남기를 바랬음에도, 지켜지지 못했다. 대개 이런 경우, 강압적인 분위기에 밀려서 난자를 제공했다는 여성이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스스로 포기하면서 연구소장을 고발하는 쪽으로 갔다면 수긍이 갈 수 있는 일이었겠지만 이번의 경우 철저히 외부에서 집요하게 추궁을 한 덕에 의학계와 연구계 내부의 불문율이 깨져 버렸다는 것이, 달랐다. 이미 연구원의 난자가 제공되었다는 사실을 캐 낸 이들이, 연구원 개인의 입장이나 프라이버시 따위에 연연해 할 리도 없었다. 그것이, 이들이 이야기하는 이른바 '사실' 이다.

매즈메디 측에서 여성의 난자를 취득하는 과정상에 적지않은 과오가 있었다.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더우기, 연구원으로부터의 난자제공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본인은 자발적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또한 얼마든지 강요될 수 있는 소지를 남길 수 있으므로 이러한 관행은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것이 옳았다. 그러나, 난자채취와 그 용도를 문제삼는 측은 정작 이보다도 더욱 중요한, 난자를 기증한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철저하게 무시해 버렸다. 생명의 윤리와, 여성의 보호를 내세우는 이들이 스스로는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져야만 하는 사회적 룰을 무참하게 깨부숴 버렸다. 이로써, 무엇이든지 의혹만 제기된다면 얼마든지 수사가 가능하고, 파헤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한 개인이야 그 치부가 적나라하게 들어난다 한 들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는 그 저열하고 후진적인, 목적지향의 윤리의식이 아직도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음을 증거해 내었다.

네이쳐 학술지의 최근 입장발표는, 사실상 황우석 교수의 난자채취가 다소의 개념적 불합리는 존재할지라도 최소한 기증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졌다는 것에서만큼은 납득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굳이 황우석의 논문에서 위 한 문장을 문제로 하고, 그것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황우석으로 하여 시인하도록 종용을 한다는 것은, 그의 두 손을 자르겠다는 행위에 다름 아니라고 나는 보았다.

무엇보다도, 난자채취 의혹이 모두 드러난 이후에, 그렇다면 그의 논문을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절차적인 수순을 밟지 않고 그와 관련된 의혹이 채 다 밝혀지기도 전에 황우석으로 하여금 위 사실을 미리서 시인하도록 서둘러 종용을 했다는 것은, 네이쳐 지가 그의 논문을 게재함으로써 사실상 그의 연구성과는 온전히 받아들이는 제스쳐를 취하되 황우석 개인의 윤리성에서만큼은 철저하게 먹칠을 하고, 그로써 향후 줄기세포 연구는 대외적으로 성장이 어려울 만큼의 도덕적인 타격을 가하겠다는 의도라고 밖엔 달리 보이지 않았다.

황우석은 왜 거짓말을 했을까? 왜 모든 게 다 드러날 때 까지 이를 부인했을까? 난, 결론적으로는 황우석이 거짓말을 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구에 사용된 난자는 모두 기증받은 것이며, 그로써 본인은 물론 그 가족이나 친지에게 어떠한 댓가도 지불된 바 없다' 이 문장은, 그것의 진위를 문제삼았기 때문에 문제가 된 문장이다. 우습게도, 난자채취 관련 논문이 아니었는데 정작 논문의 본 주제와는 별 관계가 없는 부분이 문제가 되어 버린 셈이다. 황우석이 아니라 그 어느 누구였더라도, 이것이 지금처럼 커다란 문제로 대두되리라고 예상하지는 못했을 터였다. 이런 식의 문제거리를 만들라 치면, 도대체 문제가 아니될 논문이 존재할 수나 있을지, 솔직히 의문이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와, 그 연구에 사용된 난자와 관련한 일련의 사회적 파장을 바라보면서 내가 정말 아쉬운 건, 어쨌거나 그의 연구가 연구로써 온전히 평가받지를 못하고 여전히 난자채취와 관련한 윤리적 시비에 묻혀서 같이 평가된다는 것과, 그로써 황우석을 두둔한다는 것이 결국엔 난자채취와 관련되는 비윤리성을 용인하는 쪽으로 가게 된다는 부분이다. 그 함정은, 외람되게도 애초 황우석 교수의 논문을 시비거리로 하면서 집요하게도 난자채취에 의혹을 제기하고자 했던 쪽이 파 놓았었다. 그 안에 물론 스스로도 빠져 버렸지만, 더불어 이 사건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에게도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딜레마를 씌워 버렸고. 결국 연구와 그 성과로서 평가를 받았어야 했을 황우석만 온전히 총대를 매기에 이르렀다.

황우석과 그의 연구를 폄훼하려는 자들에게 다시 얘기한다. 여성의 난자를 채취하는 것의 비윤리성을 폭로하기에 앞서, 특히나 연구의 성과가 아닌 그 과정상의 윤리를 들먹이기에 앞서, 그 고상한 기준을 스스로에게도 한번 적용해 봄이 어떨는지. '진실' 을 보도한다는 기자적 사명감은, 혹 그 진실에 응당 보호되었어야 옳을 개인의 인권조차 폭로의 수단으로 전락시켜 버리는 것도 그 사명을 지향하는 미명으로 합리화 되어도 괜찮은지.

상상조차도 못할 일이 일어났는데도, 정작 이성적이라는 자들은 오직 사실을 지적한 것이 옳다는 입장으로만 일관한다. 기가막힌 일이다. 한 개인의 프라이버시보다도 소중한 그 무엇이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인지.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추신: 작금의 국민적 정서를 천박하고 비이성적인 집단주의라 개탄을 하시는 분들에겐, 바로 그 정서가 불과 몇년 전 지금의 노무현을 탄핵에서 구출하였던 성숙한 국민의식의 발로이기도 하였음을 한번쯤은 돌이켜 보았으면 한다. 예전에도 그러하였지만 지금도, 집단행동으로 일관을 하는 국민의 정서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언제는 이를 대의명분으로 두둔하고 언제는 이를 후진국의 국민성으로 폄훼하는 자들의 이중성은, 차라리 경멸스러울 뿐이다. [디지털국회 채정현]

(이 글은 인터넷 중앙일보에 게시된 회원의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중앙일보의 논조와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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