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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연평해전 함께 추모 … 부모 제사 하나로 합치는 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제2연평해전(2002년 6월 29일), 천안함 폭침사건(2010년 3월 26일), 연평도 포격전(2010년 11월 23일).

 발생한 날짜가 서로 다르다. 정부가 이렇게 다른 사건 기념일을 하루에 몰아서 합동추모식 형태로 치르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해 논란을 낳고 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11일 “지난해 6월 국무조정실이 주관한 4차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각종 추도행사를 통합해 2016년부터 정부 주관으로 실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추모식 날짜를 언제로 정할지, 명칭을 무엇으로 할지 등 세부 사안을 정하기 위해 전문기관에 용역을 의뢰했다”고 했다.

 정부가 이러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 사건이 발생한 지 5년이 지나면 정부가 치르는 공식 추도행사를 중단한다는 국방부 부대관리훈령 때문이다. 부대관리훈령 301조는 ‘공식 추도식행사는 5주기까지 실시함을 원칙으로 하며, 6주기부터는 현충일 또는 그 밖의 기념일에 현충원에서 합동위령제로 대체한다’고 돼 있다. ‘5년’ 규정을 둔 건 정부 추도행사가 너무 많아지면 곤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부 추도행사의 경우 대통령 또는 총리가 참석하며, 군 추도행사의 경우 국방부 장관이나 군 참모총장이 참석한다.

 문제는 정부가 5년 경과 규정을 들어 연평해전·천안함사건 등의 추모행사를 하루에 몰아서 치르려는 데 대해 비판론이 만만찮다는 점이다.

 안성호(충북대 정치외교학 교수) 한국보훈학회장은 “사건 날짜와 역사·성격이 다른데, 하나의 행사로 뭉뚱그리는 것은 문제”라며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하나로 모아 ‘독립운동 열사의 날’ 행사를 하거나, 아버지와 어머니 제사를 하나로 합쳐 지내는 것과 같은 행정 편의적 논리”라고 말했다. 안 회장은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사건은 기존 북한의 도발과 달리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라며 “한꺼번에 행사를 하면 그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원한 군 관계자도 “전쟁을 치른 지 150년이 지난 미국은 게티즈버그전투 등 남북전쟁 당시 주요 전투를 기념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며 “우리도 다부동전투, 인천상륙작전 등을 별도로 기념하지 않느냐”고 했다.

 제3의 날짜를 정하는 데 대해 시간과 비용의 낭비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현충일이 별도로 있는 데다, 보훈처가 한꺼번에 몰아서 하려는 사건들이 워낙 의미가 있어 각 군에서 사건 발생일에 어차피 추도행사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해군 관계자는 “해당 사건들은 대부분 해군과 관련된 것”이라며 “정부가 특정일을 정하더라도 해군 입장에선 해당 날짜에 별도 행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 보훈처의 조치와 관련해 해당 유족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 천안함 폭침사건의 유족인 L씨는 정부 방침을 전해 듣고는 “6·25전쟁 등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모르는 분들을 한꺼번에 추도하겠다는 것은 이해가 간다”며 “그러나 사건이 발생한 날짜가 명확한데 제삿날을 옮기라는 건 유족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유족 R씨도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공약뿐만 아니라 당선 이후에도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끝까지 기억하고 책임지겠다고 했다”며 “추모식을 통합하는 건 기억하는 게 아니라 잊히도록 하는 정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훈처는 2013년 11월에도 추도식을 통합하겠다고 하다가 “예산을 줄이려 유가족들을 두 번 죽이느냐”는 언론들의 비판을 받았다. 채 1년 반도 안 돼 보훈처는 같은 일을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보훈처 관계자는 “현재 유족들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며 “날짜와 명칭을 의뢰한 용역 결과가 언제 나올지 확정되진 않았지만 올해 안에 결정해 내년부터 행사를 통합하겠다”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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