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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샷에 맞는 공 설계해야” VS “스윙 스피드 따라 공 달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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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골프 볼은 사람을 차별한다! 차별하지 않는다! 골프 볼의 인간 차별에 대한 논쟁이 일고 있다. 타이틀리스트는 “프로V1은 당신이 메이저 챔피언이든, 주말 골퍼이든 차별하지 않는다”고 광고 한다. 다른 업체들은 골프 볼은 사람을 차별하며, 아마추어에겐 프로용이 아니라 아마추어용 볼이 가장 좋다고 주장한다. 캘러웨이의 CEO 칩 브루어는 “클럽 헤드와 샤프트 등 모든 장비가 스윙스피드에 따라, 근력에 따라 개개인에게 맞는 걸 쓰는데 유독 골프공만은 다 똑같은 걸 쳐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누가 맞을까.

골퍼 차별론에서 중요한 문제는 공의 강도와 헤드스피드 관계다. 도전자들은 스윙스피드가 빠르지 않은 사람이 프로에게 맞게 제작된 단단한 공을 치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전달하지 못해 거리를 제대로 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스릭슨과 젝시오 볼을 만드는 던롭 스포츠 코리아의 김세훈 마케팅 팀장은 “야구에서 가장 멀리 날리려면 딱딱한 공을 빠른 배트 스피드로 쳐야 한다. 그러나 야구선수처럼 빠른 스피드를 낼 수 없다면 딱딱한 공이 아니라 테니스공처럼 약간 물렁물렁한 공을 쳐야 멀리 날린다”고 말했다. 딱딱한 공은 헤드스피드가 느린 골퍼를 차별한다는 말이다.

타이틀리스트는 헤드스피드에 따라 다른 공을 친다는 생각은 미신이라고 반격한다. 김영국 사장은 “스윙스피드에 따라 볼이 달라져야 한다면 같은 사람이라도 드라이버 칠 때와 웨지 칠 때 공을 바꿔 써야 한다는 말이냐”라고 했다.

타이틀리스트, 다른 브랜드들과 논쟁

헤드 스피드가 느린 골퍼를 위해 만든 브리지스톤 e6(왼쪽)와 젝시오 에어로 드라이브.

골퍼가 드라이브 샷만 하지 않기 때문에 볼은 모든 샷에 맞게 설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사람에게도 맞지 않는 공이 될 뿐이라는 것이다.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프로V1은 모든 사람에게 거리도 가장 많이 나가고 스핀도 제일 잘 걸리는, 모든 샷에 잘 맞는 전지전능한 공이라는 말인가. 그건 아닌 것 같다.

브리지스톤 백영길 마케팅 팀장은 “골프 볼 구분 원리는 간단하다. 거리를 더 보내려면 스핀을 줄여야 하고, 스핀을 늘리려면 거리에서 손해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업체들은 상급자용 볼과 아마추어용 볼을 구분해서 판다. 프로용은 스핀에, 아마추어용은 거리에 중점을 둔 볼이다. 타이틀리스트는 공의 단단한 정도를 표시하는 컴프레션은 비거리와 직접 관계가 적다고 주장한다. 양쪽의 주장은 팽팽하다.

그래서 컴프레션과 비거리의 상관관계 테스트를 했다. 고려대 디스플레이 반도체 물리학과 김선웅 명예교수와 함께다. 스윙스피드에 따라 공을 쳐야 한다고 마케팅하는 브리지스톤의 4가지 종류 볼을 각각 헤드스피드 시속 70마일과 110마일에서 12번씩 골프로봇으로 온도 24도에서 트랙맨3으로 실험했다. 실험 결과 70마일에서 압축 강도 66인 B330-RXS가 179.4야드로 가장 거리가 길었다. 캐리와 런을 포함한 거리다. 헤드스피드 110마일에서는 압축강도 84인 e7이 286.7야드로 가장 길었다. 거리 차는 70마일에서 4.4야드 110마일에서 4.3야드가 났다.

본지는 한 글로벌 볼 업체의 비공개 내부 자료도 입수했다. <그림 참조>헤드스피드가 비교적 느린 초속 78.2마일에서 거리용이 가장 유리했다. 그러나 스피드가 빨라질수록 딱딱한 스핀용 볼이 유리했다. 거리차이는 4야드였다.

그래도 우리가 짐작했던 것보다는 작다. 김선웅 교수는 “실험대로 거리 차이는 적으면 2야드, 많아 봐야 4야드 정도에 불과하다”고 했다. 차이는 있긴 한데 너무 작아 의미가 없다는 것이 김 교수의 결론이다.

비거리 1야드가 천국과 지옥 가를 수도

그 차이가 큰지 작은지는 각 골퍼가 판단할 문제다. 단 1야드가 천국과 지옥의 차이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1야드는 롱기스트냐 아니냐를 구분할 수도 있고 물에 빠져서 트리플 보기를 하느냐 그린에 올라가 버디를 잡느냐의 차이를 만들 수도 있다.

수백만원씩 하는 시니어 장타용 비공인 이른바 ‘명품’ 드라이버와 일반 드라이버의 거리 차이는 1~3야드 정도라고 한다. 이를 감안하면 공에 투자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거리가 전부는 아니다. 거리를 선택하느냐, 스핀을 선택하느냐도 중요한 화두다. 타이틀리스트는 “골프의 목적은 공을 멀리 치는 것이 아니고 적은 타수에 홀에 집어넣는 것이다”고 말했다.

타이틀리스트에 도전하는 쪽은 아마추어의 사정은 다르다고 한다. 대부분 주말 골퍼의 그린적중률은 낮다. 그린에 올라가는 것보다 못 미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럴 경우 스핀이 적은 것이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 굴러서라도 그린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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