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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 '군신좌사(君臣佐使)' 처방, 과학적 근거 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군신좌사(君臣佐使). “주된 약효를 내는 ‘임금(君) 약’을 다른 약들로 보조·강화하고(臣), 독성을 낮추며(佐), 질병 부위로 인도하고 중화한다(使)”는 전통 한방(韓方) 원리다.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이 처방의 과학적 근거를 생명공학자들이 찾아냈다. 양약 분석에 쓰이는 '시스템 분석(systems approach)' 기법을 이용해서다.

KAIST 생명화학공학과 이상엽 특훈교수가 이끄는 (재)유전자동의보감사업단 연구팀은 한약ㆍ양약 화합물과 인체 내 대사산물의 화학적 구조를 비교한 결과, 한약 화합물이 인체 대사산물과 더 유사한 구조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11일 밝혔다. 또 여러 성분을 함께 섞어 만드는 한약 제조방식(군신좌사)이 체내에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세계적인 생명공학 저널인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 최근호에 소개된 논문을 통해서다(논문명, ‘A systems approach to traditional oriental medicine’).

전통 한방은 과거부터 여러 질병의 치료, 증세 완화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한약의 다양한 성분이 구체적으로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베일에 쌓여 있었다. 임상 검증이 힘들어 현대적 신약 개발에 활용하기도 힘들었다.

연구팀은 이 걸림돌을 극복하기 위한 첫 단계로 한약 화합물과 인체 대사산물의 구조 유사도(structural similarity, 두 특정 화합물의 구조가 유사한 정도)에 따져봤다. 한약 화합물이 구조가 유사한 대사산물의 합성 대사경로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그 결과 재밌는 사실이 드러났다. 여러 성분을 섞어 ‘시너지 효과’를 내는 한약 대부분이 주 약효를 내는 화합물 있고 다른 화합물들이 이를 보조하는 구조로 돼 있었던 것이다. 바로 전통 한방처방 원리인 ‘군신좌사’ 구조 그대로다. 개 중에는 ‘군-신’ 구성도 있었고 ‘군-좌’ ‘군-사’ 구성도 있었다. 연구팀은 이 개념을 논문에 한글 발음 그대로 “Kun-Shin-Choa-Sa”라고 표기했다. 세계적인 저널에 한글로 된 과학개념이 소개되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연구팀은 구조 유사도 분석으로 바탕으로 이런 '시너지 효과' 화합물들이 주로 아미노산과 비타민 관련 대사경로에 작용할 것이란 예측결과도 내놨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는전통 한약의 약효를 규명하기 위한 첫 단추를 꾄 것”이라며 “인체 가상모델과 임상실험을 통한 검증이 다음 과제”라고 말했다.

김한별 기자 kim.hanb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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