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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通新이 담은 사람들] 아버지 합창단, 우리가 원조랍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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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매주 ‘江南通新이 담은 사람들’에 등장하는 인물에게는 江南通新 로고를 새긴 예쁜 빨간색 에코백을 드립니다. 지면에 등장하고 싶은 독자는 gangnam@joongang.co.kr로 연락주십시오.

 지난달 23일 오후 6시, 서울 방배동 지하에 있는 한 연습실로 멀쑥한 차림의 중년 남성들이 하나둘 들어섰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이들은 ‘우리아버지합창단’ 단원들이다. 매주 월요일 오후 7시30분부터 10시30분까지 3시간이 이들의 연습 시간이다. 이날은 24일 여주에 있는 소망교도소에서 부를 노래를 연습했다. 우리아버지합창단의 역사는 이탈리아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김신일(61·지휘자)씨가 단원들을 모아 합창단을 만든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7년은 외환위기(IMF)로 나라가 시름에 빠져있던 때였죠. 명예퇴직 바람이 불었고 아버지들은 설 곳을 잃었어요. 또 남자들만의 문화라는 게 사실 건전한 게 없잖아요. 그래서 남자들끼리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좋은 일을 해보자며 모였어요”

2013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16회 정기연주회.

 그렇게 모인 단원이 16명. 지금은 아버지 합창단이라는 이름이 익숙하지만 당시만 해도 합창단 이름에 아버지가 들어가는 곳이 없었다. 그 때문에 반대하는 단원들도 있었다. 손치중(56)씨는 “아버지란 이름이 촌스럽다는 생각에 반대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후 아버지라는 이름을 사용한 최초의 합창단으로 한국 기네스북에 올랐고 수많은 아버지합창단의 모델이 됐다. 합창단 단원 수도 70여 명으로 늘었다. 연습이 있는 월요일에는 50여 명의 단원들이 모인다.

 ‘이 사회에 필요한 아름답고 따뜻한 아버지의 역할을 음악으로 대신해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게 우리아버지합창단의 설립 목표다. 목표대로 이웃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대표적인 게 로버트 김을 위한 공연이었다. 2000년 미국에서 간첩 혐의 죄로 억울하게 복역 중이었던 로버트 김을 위한 특별 공연을 미국 현지에서 열어 구명 운동에 참여했다. 또 아동보육시설이나 교도소 등을 정기적으로 찾아다니며 음악에 담긴 사랑의 메시지를 전한다. 지자체 초청 공연 무대에도 종종 오른다. 다양한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건 가곡에서부터 우리 민요, 영화음악, 오페라까지 다양한 노래를 소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매주 3시간씩 꼬박꼬박 연습을 한다.

 연습을 이유로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오는 남편과 아버지에게 불만을 터트릴 만도 한데 아내와 아이들은 누구보다 든든한 팬이다. 매년 연말에 여는 정기연주회에는 가족들을 초대한다. 평소와 다른 무대 위 아버지의 모습은 가족들에게 감동을 준다. 친구들도 마찬가지. “술 한 잔 하자”며 전화하는 친구들도 합창단 연습이 있는 월요일만큼은 연락하지 않는다. 회장 최승민(58)씨는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아버지합창단에서 함께 노래했으면 좋겠다. 노래를 못해도 성실한 남성이라면 누구나 환영한다”고 말했다.

만난 사람=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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